[사설] 사람 잡는 스토킹을 8만원짜리 경범죄로 다스리나

입력 2012-12-03 19:18

경범죄처벌법상 스토킹은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며,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통상적인 애정표시와는 달리 비뚤어진 집착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고통이다. 최근에는 첨단장비로 위치추적을 하거나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스토킹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극으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2009년 5월 경북 경산에서 임신상태이던 옛 애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4월 전북 군산에서는 짝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경찰이 미용실 주인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지난 1월 최모씨는 가수 채연의 휴대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 8년간 스토킹하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스토킹 방식이 악랄해지면서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스토커를 피하기 위해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는 등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피해자 대부분이 공포와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된 처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이나, 가해자의 감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까지 보태져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심할 경우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법은 멀리 있다. 현행 형법에서는 스토킹 자체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어 협박이나 폭행 등 다른 구성요건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다. 가수 채씨의 스토커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폭력을 쓰지 않는 채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부분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이번에 경찰청이 경범죄 처벌 대상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스토킹을 범칙금 8만원짜리 처벌대상으로 분류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시행령이라는 법적 수단이 가지는 한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스토킹을 문신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범죄와 같은 레벨로 규정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적어도 경범죄처벌법상 가장 무거운 암표 매매 16만원을 능가하는 범죄로 올려놓고 입법을 도모해야 옳다.

더 큰 책임은 게으르고 무감각한 정치권에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모든 주에서 반스토킹법을 만들어 보통 2∼4년의 징역에 처한다. 일본도 2000년부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우리나라는 1999년과 2003년에 이어 올해도 이낙연 의원이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으나 논의가 지지부진해 폐기위험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