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나침반] “당신 건강을 책임지는 건 철수 엄마가 아니에요”
입력 2012-12-03 17:37
필자는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과 아이들 감기와 같은 일차 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소위 ‘동네 의원 원장’이다. 진료 후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원 등을 가야 하는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춰 주기 위해 비교적 빠른 진찰 및 처방을 하는 편이지만, 만성 질환 때문에 찾아온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초진 환자인 경우 가급적이면 자세하게 질병의 정의, 원인, 경과, 치료 방법 및 예후 등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만성 질환자입니다”라는 말을 할 때면 평소 원만했던 관계가 순식간에 어색해지는 곤혹스런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을 타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은 설명과 설득으로 정면 돌파 되지만 가끔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넘기 힘든, 그래서 한숨을 쉬며 잠시 주저앉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바로 “만성 질환 치료약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된다던데, 그 짓을 지금부터 어떻게 해?”라는 식의 말이다. 즉 일단 약을 먹기 시작하면 좀처럼 끊을 수 없으니 시작을 최대한 늦추거나 아니면 아예 안 먹고 버티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말은 치명적인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는 약을 매일 복용해야 하는 수고(?)가 남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인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야기될 수 있는 만성 질환 합병증은 그 자체만으로도 약을 매일 먹어야 되는 부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니 남은 인생 전체를 아예 송두리째 없애버릴 수도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특별한 의도 없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신의 건강은 우리 회사 김 대리도, 이웃집 철수 엄마도 책임져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자신의 현재 건강 상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주변 사람도 아닌 자신의 주치의인 것이다.
자, 이제는 의학적 근거 없는 허위 정보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신의 건강을 책임져줄 주치의의 판단을 믿고 따르자.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얘기하고 다니는 김 대리나 철수 엄마에게 가서 이렇게 얘기하자. “당신 말 듣고 따랐으면 큰 코 다칠 뻔했다”고.
조성현 조성현가정의학과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