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4) 고상한 죄인임을 깨우쳐준 “너 구원 받았니?”

입력 2012-12-03 18:23


고교 2학년 여름방학에 이어 겨울방학 때 또 한번 집을 나갔다. 당시 나는 수원에 ‘영복여고’가 설립되면서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3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터라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방황을 정리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밀린 공부를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머니와 상의 끝에 겨울방학 동안 경희대 교수로 계시는 친척 집에서 머물며 서울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 번째 가출을 위해 짐을 쌌다. 서울로 향하는 길, 마음은 착잡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봐도 대답 없는 삶이 허무했다. 더 힘든 것은 이런 질문을 마음 놓고 주고받을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미국과 전 세계에 엄청난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던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봤다. 과연 그 말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는 신의 부재설을 주장했는지, 아니면 니체도 나처럼 신의 존재를 찾아 헤매다 그렇게 표현했던 것인지….

결과적으로 니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적절한 답을 듣지 못했다. 기성세대의 모순적 대답들이 그를 절망하게 만들었고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적 사고로 세상을 전환케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온 그날, 회기동 시장에서 친척집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도와준 손길이 있었다. 경희대 약학과 4학년생으로 친척집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심재화’ 언니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나는 종종 언니를 만나 경희대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다. 언니가 있어 두 번째 가출은 외롭지 않았다.

하루는 언니가 물었다. “너 구원받았니?” 공부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성경을 꺼내 읽던 중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물음에 순간 멈칫했다. 사실 나는 종교적으로는 열심이었다. 성경동화구연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성가대원으로 봉사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나님을 찾으려고 금식기도까지 했던 나였다. 그런데 “너 구원받았니”란 질문은 너무 생소했다. 차라리 “너 교회 다니니”라고 물었으면 “그럼요. 어렸을 때부터 다녔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재화 언니는 정확하게 다시 질문했다. “영숙아 구원받았니? 다시 말해서 네가 만약에 지금 죽는다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구원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있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언니는 ‘죠이선교회’로 나를 인도했다. 지금은 제기동에 본부가 있지만 그때는 퇴계로 5가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선교훈련원(GMTC) 원장을 지낸 이태웅 목사님(당시는 ‘형제님’으로 불렸다)이 저녁집회에서 설교 중이었다. ‘고상한 죄인’(롬 1:18∼32)이란 제목으로 목사님은 죄의 종류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했다.

처음엔 낯설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고교생의 신분으로 갔던 자리가 어색했다. 특히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마치 도매급으로 죄인을 만드는 것 같아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바로 고상한 죄인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교회는 다녔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음을, 종교적인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성도였음을 이내 회개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여러 날을 교회에서 보내며 성탄절 때마다 새벽송을 돌던 내가 처음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