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정원교] 천안문광장의 ‘강남스타일’
입력 2012-12-02 19:40
“오빤 강남스타일∼.”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25일) 아침 천안문(天安門) 광장에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베이징 국제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출발 대기 중 몸을 풀 수 있도록 한 주최 측 배려였다.
무대 위에서는 에어로빅 강사가 노래에 맞춰 율동을 이끌었다. 대회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환호성을 지르는 그들과 함께 말춤을 추다 보니 쌀쌀한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몸은 어느새 훈훈해졌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는 현대차 중국법인 ‘베이징현대’였다. 출발지점 대형 아치에도, 선수들 등번호에도 ‘北京現代’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베이징마라톤은 1981년 시작됐으니 짧지도 길지도 않은 32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올해 베이징 마라톤대회는 참 힘들게 열렸다. 대회는 당초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월 중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일정을 몇 차례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지난달 8일에야 개막됐기 때문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으로 당 지도부 구성에 진통을 겪은 데다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잠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뒤였다.
당 대회 장소는 천안문광장 서편에 위치한 인민대회당. 이곳 주변에서는 당 대회 기간 개미도 얼씬하지 못할 만큼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그러니 그 전후로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라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여기에는 약간 들뜬 분위기도 한몫했다. 참가자들 중에는 지방도시에서 원정온 팀도 적지 않았다. 이날 하루 동안은 광장 남쪽에 자리잡은 모주석기념당(毛主席紀念堂)도 문을 닫았다.
광장을 떠나 창안제(長安街)를 거쳐 베이징 심장부를 달리는 동안 길가에 나온 시민들은 끊임없이 “자유(加油)”를 외쳤다. 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베이징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즐기는 현장을 모처럼 목격하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이날만큼은 그들도 시진핑 시대 개막이니, 모주석이니 하는 것들을 떠올릴 겨를이 없는 듯했다. 베이징 시민들이 ‘엄숙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가 오지 않을까.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