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3) “엄마, 나 하나님 찾으러 가요” 기도원으로 가출
입력 2012-12-02 17:47
“하나님을 찾으라.”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가 남긴 이 말씀은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에 하실 말씀이 많으셨을 텐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셨을까. 그 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온 나였다.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예배, 철야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나의 방황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었다. 성경을 보면 답을 얻을까 싶어 열심히 통독했다. 철학서적과 불경까지 읽었다. 친구를 따라 천주교회도 가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급기야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보따리를 쌌다. 내 안의 갈등과 방황의 마음을 잠재워야 공부를 하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유언인 하나님을 찾기 위해 가출을 결심했다.
“엄마, 나 하나님 찾으러 가요. 아버지가 하나님 찾으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디 계신지 꼭 찾아서 돌아올게요.”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기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여름이면 늘 가셨던 칠보산기도원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금식을 결심하고 예배를 드렸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도하면 불쌍히 여기셔서 먼저 하나님이 찾아와 주실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하나님은 응답이 없었다. 급기야 방을 같이 쓰던 어르신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쓰럽게 쳐다봤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속으로만 부르짖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신지 말씀 좀 해주세요. 아버지는 피란길도 그렇게 잘 인도해 주셨다면서요. 왜 저에게는 안 나타나시는 거예요. 제가 여기까지 당신을 찾아왔는데 왜 아무런 답이 없으신 건가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기도원에 부흥사로 오신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리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찾으러 왔어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금식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방법 좀 가르쳐주세요.”
목사님은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보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여줬다. 당시 유행하던 사진 필름을 손으로 돌리면서 보는 사진기 같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성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본 것은 허허벌판에 무너진 성벽, 허름한 교회들이었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목사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고는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분명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만날 거야.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거라.” 답을 얻지 못한 나는 실망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도원에 있는 것도 불가능했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냥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살면 되는 거야. 아버지는 괜한 말씀을 하셔서 시간만 낭비했잖아. 내가 잘하면 다 잘되는 거야.” 집으로 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부만 했다. 어머니도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기도원에서 만났던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그해 겨울방학 때 두 번째 가출을 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