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선원, 더 이상 해적들의 봉 아니다
입력 2012-12-02 21:37
제미니호는 싱가포르 선적의 화물 운반선이다. 야자유 2만8000t을 싣고 인도네시아에서 케냐 몸바사로 향하던 이 배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것은 2011년 4월 30일이다. 당시 배에는 박현열 선장과 김형언 기관장, 이건일 1등 항해사, 이상훈 1등 기관사 등 한국인 4명을 비롯해 25명이 타고 있었다. 나머지는 인도네시아인 13명, 중국인 5명, 미얀마인 3명 등이다.
제미니호가 납치된 아프리카 동부 해역은 해적들의 천국이다. 2010년 4월 4일 한국인 5명이 타고 있던 삼호드림호가 피랍 88일 만에 석방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인 2명이 탄 금미 305호가 피랍 124일 만에 석방됐으며, 지난해 1월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의 한국인 8명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통해 구출됐다.
그러나 이후 아프리카 연안의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미니호 피랍은 ‘아덴만의 여명’이 채 걷히기도 전에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해적들의 납치는 더욱 대담해졌고 협상은 교활해졌다. 이들은 싱가포르 선사와의 협상 끝에 선원 전원을 석방하는 것처럼 행세하다가 한국인 4명만 다시 납치해 별도의 돈을 요구했다.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테러집단이나 해적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불개입 입장을 끝까지 견지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때 선원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악순환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더 이상 한국인이 해적들의 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1일 극적으로 풀려난 제미니호 선원들은 무려 582일이라는 국내 최장기 해적 피랍사건으로 남게 됐다. 악조건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선원들의 용기를 치하하며 빠른 회복을 빈다. 정부도 더 이상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작전 성공에 깨어나지 못해 대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재판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납치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