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佛 우파 대통령이 남긴 교훈

입력 2012-12-02 18:31


지난달 22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보르도 법정에 소환되었다. 불법 대선자금 수수가 문제였다. 지난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파리 시장일 때의 부패 혐의로 조사받았던 일을 상기하면 프랑스의 최대 우파 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배출한 두 대통령 모두 임기 종료 후 법원에서 조사받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혐의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집안싸움 와중에서 불거졌다.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알려진 설립자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가 고령으로 재산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의 딸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400만 유로에 달하는 거액이 2007년 대선 캠프를 통해 사르코지에게 전달되었다는 베탕쿠르 쪽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보르도 법정에서 사르코지는 4600유로로 한정된 정치헌금 액수를 훨씬 초과하는 돈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당시 85세의 고령이었던 베탕쿠르의 흐려진 판단력을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또 대통령 재임 시절 권력을 남용해 이런 혐의를 은폐하고 고의적으로 수사를 방해하지 않았는지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사르코지는 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사건 담당 검사들은 사르코지를 ‘요주의 증인’으로 지정함으로써 여운을 남겨두었다.

돌이켜보면 사르코지는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독특한 존재였다. 선거전 당시 변화의 기치를 높이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치 1980년대 영국 마거렛 대처 총리가 시도했던 사회, 경제적 변화가 프랑스에서도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변화는 수사에 그쳤다. 아니 변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스타일에 불과했다는 자조 섞인 반성이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나왔다.

엘리제궁에 들어서면서 사르코지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좌파 출신 거물 정치인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민들을 대거 내각에 기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차례차례 해임된 것이 그 한 예다.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하라는 대통령의 외침에 프랑스인들은 더 많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다고 응답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내무장관으로서 2005년 가을 프랑스 대도시 교외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봉기의 촉발자이기도 했던 사르코지는 ‘교외지역 희망 계획안’을 수립했지만 2011년 무렵에는 거의 용도폐기됐고 소수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됐다. 외국인 출신 프랑스인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정책을 밀고 나갔던 내무장관이 유럽연합의 집행부로부터 반아랍 인종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임 내무장관은 어떤 문명들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열등하며 프랑스 국민 통합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 문명의 위협을 과감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사회적 차별 해소를 통한 화해보다는 치안유지 일변도의 강경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가 프랑스 최대 극우정당 민족전선(FN)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르코지 정권의 강경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틈을 타 민족전선은 자신들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우파임을 선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대선에서 민족전선이 당당하게 3위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사르코지 정권의 공이 크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의 22년 만에 정권을 넘겨준 허탈감 속에서 프랑스 우파 정당이 차기 지도자 선출을 놓고 심각한 분열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 와중에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패배를 자초한 정치가의 복귀에 기대야 하는 곤궁한 상황은 누구 책임일까. 그를 뽑았던 유권자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일까.

김용우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