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깨진 항아리에 물채우기

입력 2012-12-02 17:42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갈증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갈증이다. 신앙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찾아오는 갈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더 큰 풍성함’을 향한 갈증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큰 풍성함’에 대한 갈증이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누릴 풍성함의 전부가 아닌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해답을 얻은 것이다. ‘달마야 놀자’라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사찰에서 승려들을 대상으로 큰스님이 내기 문제를 하나 낸다. ‘바닥이 깨어진 항아리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물을 가득 채워라!’ 그러자 수도승들은 바가지로 연못의 물을 정신없이 퍼 나른다. 빠른 속도로 물을 부어보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밑이 깨어진 항아리에 물이 찰 리 없다. 나중에는 고무신을 벗어 틀어막고 물을 부어본다. 그러나 헛수고일 뿐 물은 차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한 수도승이 소리를 지른다. ‘들고 뛰어!’ 승려들은 큰 항아리를 들고 연못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는 연못 속에 항아리를 통째로 던져 버린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리 밑이 깨어진 항아리라 해도 연못물 속에 통째로 잠겼을 때 그 항아리는 연못의 물로 가득 차고 넘치게 된다. 큰스님이 그걸 보고 깜짝 놀란다. 정답을 찾은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깊은 감동을 느꼈다. 왜?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듯했다. 그렇다. 인간은 깨진 항아리와 같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면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항아리를 통째로 생수의 강물 되시는 하나님께 던지는 것이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 우리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그 풍성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항상 머리는 복잡한데 가슴은 서늘하게 비어 있는 것이고, 마음의 갈증은 해갈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의 생수를 향해 나를 통째로 던지지 않는 한 우리는 충만함을 누릴 수 없다. 던져야 한다. 마음도, 시간도, 관심도, 모든 것을 다 던져서 그 속에 잠겨야만 한다.

16세기 위대한 성녀 아빌라 테레사가 풍성함을 갈구하면서 기도하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테레사야, 네 안에 나를 가두려고 수고하지 마라. 그 대신 네가 내 안에 갇히도록 하여라.” 이 음성이 그 마음을 녹였다. 그는 대답했다. “주님! 크신 주님을 내 안에 가두지 않겠습니다. 제가 주님 안에 갇히게 하소서.” 여기서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강물에 발 담그기를 하듯 깨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식의 척박한 삶이 우리의 한 해였다면 깨진 항아리를 통째로 강물에 던져 버리는 삶으로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면 어떨까?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