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이사야 기자 구세군 자선모금 현장 체험] 한푼 두푼 쌓이는 온정… 추위도 잊어
입력 2012-11-30 19:13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유지할 것.’ ‘종은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어 소리에 여운이 남게 할 것.’
구세군 자선모금이 시작된 30일 낮 12시30분, 교육받은 내용을 외우면서 서울 명동으로 향했다. 미리 도착해 있는 구세군 사관학생 2명과 함께 명동 입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거리는 쇼핑 나온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사관학생의 지도로 종을 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운이 남게 종을 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종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외면했다. 실망감에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모금을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자 기다리던 첫 모금자가 나타났다. 홍준의(45)씨는 “올해부터 신용카드로도 모금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모금함에 설치된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2000원을 기부했다. 감사인사가 절로 나왔다. 영하로 내려갔던 기온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2시간이 지나자 다리는 아프고 손은 시렸다. 사람들의 외면도 계속됐다. 구세군 사관학교 2학년 김선화(37·여)씨는 “육체적 피로보다 차가운 외면의 시선들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오후 2시30분,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마스코트 오랑우탄 ‘오랑이’. 순식간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여러분이 지폐를 쥐어 주시면 오랑이가 대신 모금함에 넣어드려요.” 박근일(32) 사관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랑이는 훈련받은 대로 돈을 수거해 모금함에 넣었다. 박수가 쏟아졌다. 김연정(28·여)씨는 “기부를 통해 마음도 따뜻해지고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이벤트”라고 말했다.
30여분 뒤 오랑이가 떠나고 구경꾼들도 흩어졌지만 기부의 손길은 계속됐다. 강선숙(37·여)씨는 모금함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 딸 장이정(6)양의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에 담았다. 강씨는 “딸의 인생에서 첫 기부를 기록해두고 싶다”며 “이정이가 평생 동안 남을 돕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에는 초라한 행색의 한 남성이 동전 몇 닢을 모금함에 넣은 뒤 사라졌다. 박 사관생은 “모금함 안의 돈은 10원이든 10억원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값지다”며 “가난해도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한 푼 두 푼 넣어주는 마음이 참 소중하다”고 말했다.
구세군은 이번 달 24일까지 전국 76개 지역에서 자선냄비 모금캠페인을 진행한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