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사퇴] 韓 총장 사퇴하던 날… 두 번 허리 숙여 사죄, 쓸쓸한 불명예 퇴장

입력 2012-11-30 18:59


한상대(53) 검찰총장의 퇴장은 쓸쓸했다. 감색 정장 차림의 한 총장은 30일 오전 10시 역대 총장의 초상화가 걸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 대회의실로 들어왔다. 무겁고 굳은 표정이었다. 한 총장은 대회의실에 입장하자마자 한 차례, 사퇴문을 읽던 중 한 차례 등 모두 두 차례 허리를 숙여 국민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는 “남의 잘못을 단죄해야 할 검사의 신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그 직위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검찰의 총수로서 어떠한 비난과 질책도 달게 받겠다”며 잇단 검사 비리에 대해 사과했다. 한 총장은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다”면서 짤막한 사퇴문을 1분 만에 읽고 연단을 내려왔다. 그의 옆에 선 대검 고위 간부는 박계현 대변인 한 명뿐이었다.

그는 1층 현관에 대기하던 검찰 간부 7∼8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28일 자신의 감찰 지시에 항명했던 최재경 중수부장의 손도 잡았지만 말을 건네진 않았다. 한 총장은 취재진에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조직을 추스르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 검찰을 좀 잘 돌봐 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청사를 떠났다. 항명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한 것이다. 한 총장이 사퇴 발표를 하기 1시간 전, 채동욱 대검 차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을 포함한 대검 부장들이 총장실로 찾아가 “그동안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한 총장도 간부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고, 특히 최 중수부장에게 “피해를 줘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후문이다.

한 총장이 이날 ‘검찰 개혁안 발표 후 사퇴’를 포기한 데에는 자신의 개혁안이 힘을 받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을 실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신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에서 개혁안이 적극 추진되기도 어렵고, 특수부를 중심으로 검찰 내부의 반발 움직임도 강했다.

한 총장은 전날 밤까지 새누리당 등에 구명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9일 밤늦게까지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한 총장이 야권의 사퇴 요구를 언급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는 “한 총장은 대선 전까지 검찰이 현 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했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런 의견을 청와대 쪽에 전달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물론 여권에서 누구도 한 총장의 손을 잡아주지 않아 고독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 총장은 지난해 8월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부정부패와의 전쟁, 종북 좌익 세력과의 전쟁, ‘우리 내부의 적’인 오만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재임 기간 공안 수사와 내부 감찰 등을 강화했다. 그러나 잇따른 편중인사 및 부실수사 논란에 이어 검사 비리가 터져 나왔고, 최 중수부장과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검사들의 집단반발에 부딪혀 29년 동안의 검사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강주화 김나래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