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2) 내 삶 인도한 아버지의 유언 “하나님을 찾으라”

입력 2012-11-29 18:12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고명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아들만 셋을 낳고 처음으로 딸을 낳았다며 나의 존재 자체를 기뻐해 주셨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마음 한 편에 아픔이 있었다. 어린 자식 둘을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부모님은 또 아들을 잃을까,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신중했다. 두 아들과 달리 ‘종’자 돌림을 피해 오빠 이름을 ‘춘식’으로 지었다.

부모님의 간절함을 알았던 것일까. 오빠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안겨드렸다. 경기도 안산에 성암장로교회를 개척하고 16년째 종의 길을 걷고 있는 이춘식 목사. 초기 기독교 신앙을 간직한 우리 집안에 첫 목회자가 탄생한 것이다. 남동생 이종만 이사장은 남양주에서 ‘좋은나무성품학교 밀알어린이집’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얀 모시 한복을 즐겨 입으시고 눈물로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평안남도 평광군이 고향인 아버지는 6·25 때 삼촌들과 같이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북한이 고향인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피란길에 만난 두 분은 결혼했고 매일 같이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렸을 때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왜 아버지는 날마다 저렇게 울고만 계시지’라며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렇게 기도하시는 아버지가 나약해보이기까지 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믿음 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는 피란 시절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다고 했다. 전쟁 통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 삼남매에게 이렇게 당부하곤 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만나고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무 곳이나, 아무 사람이나 따라가면 안 된다. 오직 주님 계신 곳이 길이야.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고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이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 건 아버지의 인생을 안전하게 인도해주셨던 주님이 바로 나의 길이요, 생명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비전과 관련해 잊지 못할 아버지의 기도가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신이여, 구원하시는 성신은 강과 같이 흐른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우리 삼남매는 그 기도를 따라했다. 그런데 훗날 ‘교육으로 선교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에스겔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겔 47:9).

그 시절 익숙하게 들었던 아버지의 기도가 말씀 가운데 존재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경제적으로 유산을 물려주시지 못했다. 국수공장,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신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청난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셨다. 아버지의 기도가 내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평생의 비전과 사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믿고 따랐던 아버지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울지 말고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이 찬양을 들으며 아버지는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하나님을 찾으라.”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