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41) 세상에 마법의 주문을 외는 몽상가… 시인 강성은
입력 2012-11-29 18:24
경북 의성 출신의 강성은(39)은 1남 2녀 중 장녀이다. 아버지는 낙천적이고 엉뚱한 분이어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양봉업을 하다 장마에 다 떠내려가서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가 또 그만두고 산속에 연구실을 차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형편이 어려워져 한때 힘든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유년 시절은 병약했다. 자주 아팠으며 초등학교 때까지 몽유병이 있어서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서 자랐다. 캄캄하고 추운 곳에서 깨어 울던 소녀, 조용하고 우울한 소녀 강성은은 훗날 유년 시절의 한때를 환상적으로 재구성한다.
“정수리의 태양이 일순간 검게 변해 흘러내리는데/ 잠든 아이들의 눈꺼풀을 나뭇잎처럼 똑똑 따는데/ 나쁜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데/ 잠옷차림의 나는 운동화 끈을 씹으며 다리 위를 걸어간다/ 이곳은 마녀의 젖꼭지처럼 추워/ 잠옷 속으로 얼음손가락들이 들어왔다 이내 녹아지고/ 다리 위로 계절들은 달려가고 애인들은 흩어지고/ 나는 열두 살 때 입었던 잠옷을 입은 채로 다리 위를 걸어간다”(‘한낮의 몽유’ 부분)
동화적 상상력에서 발원한 슬픔
악몽마저도 빛나게 한 몽상의 힘
태양이 일순 검게 변했다거나 잠옷 속으로 얼음손가락이 헤치고 들어온다는 표현은 거의 본능적인 감각이다. 한순간 공황에 빠져들고 마는 느낌. 그것은 악몽이면서도 악몽이 피우는 빛나는 소요가 아니겠는가. 이 아련한 아픔의 시를 읽노라면 어느새 누군가의 꿈의 한복판에 들어와 어찌할 줄 모르는 ‘나’를 만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잠자는 것에 극도로 예민했고 꿈을 굉장히 많이 꾸던 소녀. 현실 속에서 기시감을 느끼기는 다반사였다.
스물여섯 살 때 친구가 얘기해 줘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재학 중엔 시보다 소설을 더 열심히 썼다. 시는 너무 어려워보였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시를 쓰게 됐고 마침내 서른두 살이던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어릴 적에 슬픈 미학과 정서가 담긴 북유럽 동화를 무척 좋아했던 그는 음악을 들어도 그림이나 영화를 봐도 그런 비슷한 것에 끌렸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는 그의 시 세계가 환상이나 상상력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현실인 것이다.
“런던 포그는 아버지가 입던 양복의 이름/ 지금은 사라져 버린/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아버지와 양복/ 어느 날은 겨울 나뭇가지 끝에 걸려있고/ 어느 날은 비에 젖은 채로 중얼거리고/ 눈 내리는 밤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텅 빈 가을을 가로지르고/ 시시각각 형체를 바꾸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몇 세기 동안 녹지 않는 눈사람이 되어/ 겨울이 되면 다시 그 집 앞에 서 있다”(‘런던 포그’ 부분)
그의 시에 등장하는 소녀는 얼마쯤 슬픔을 간직하고 있고,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끝없이 슬픈 이야기를 생산해낸다. 슬픔은 대를 이어 반복되고, 한 생명 속에서도 반복된다. 그 속에서 빠져나온다면 슬픔이 끝나겠지만, 그는 그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반복되는 슬픈 이야기의 근원은 바로 어머니의 뱃속. 어머니에서 딸로 대대로 내려오는 검은 물, 그 물의 고요함과 먹먹함일 것이다.
강성은은 집에 있는 걸 좋아해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몽상이 중심부에 꽉 들어차 있으니 주변에 관심 있는 게 별로 없다. 이 소박한 듯 다부진 몽상가에게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현답이 돌아온다. “다음 시집은 그냥 천천히 내려고 합니다. 주변의 재촉하시는 분들께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아직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잘 모르는 채로 가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어디로 갈지 잘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강성은의 진정성일 것이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마법의 주문을 외는 몽상가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