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고택과 80대 종손, 그 고졸한 삶… ‘아버지의 집’

입력 2012-11-29 19:27


아버지의 집/글·사진 권산/반비

시간이 멈춘 곳이다. 21세기에 갓 쓰고 사는 권헌조옹, 그가 산 경북 봉화의 300년 된 고택 송석헌(松石軒·중요민속자료 제246호)이 그렇다. 안동 권씨 가문의 종손이자 8대째 이 집의 주인으로 살던 권옹의 나이는 2010년 촬영 당시 83세. 사진집은 이렇게 오래된 집과 한몸이 돼 살아가는 노인에 얽힌 이야기를 몇 차례 여행을 통해 다큐멘터리 찍듯 담았다.

전남 구례로 낙향한 작가 권산. 어느 날 아는 방송국 PD로부터 곧 정부 예산으로 전면 대보수에 들어가는 송석헌의 사진 촬영을 요청받는다. ‘영남 지방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가옥’이라는 송석헌. 그 큰 집에서 그는 혼자다. 변을 맛보며 건강을 살피던 부모님은 진작에 세상을 떠나셨고,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했던 아내도 먼저 갔다.

왜소한 체구의 그가 건사하기에는 벅찬 집이다. 습관의 힘으로 그 일을 감내하는 체화된 일상이 카메라에 잡힌다. 아침저녁 의관을 정제하고 집 위 언덕의 부모님 산소를 성묘하고, 하루 한번은 먼지 켜켜이 쌓인 집안을 둘러보는 모습을.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서 살아가던 그의 모습은 큰 집만큼이나 낯설다. 공사가 시작되고 노인은 병원에서 임시 거처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권동재 선생이 뼈대만 남은 집을 지키며 사는 모습도 담긴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날아온 권옹의 갑작스런 부음.

“집 때문일 겁니다. 집을 떠나 계셔서 몸도 떠나신 것이지요.” 송석헌으로의 마지막 여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 집에 머물기로 했던 권동재 선생마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이뤄진다. 작가는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향해 주장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