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品’ 사치·허영으로 설명 안 되는 두 글자… ‘명품시대’

입력 2012-11-29 19:27


명품시대/왕얼쑹/더난

프랑스 파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엔 일흔다섯 살의 할머니가 혼자서 말을 기르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매년 세계적인 컬렉션 시즌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바빠진다. 샤넬 직원이 원단을 가져와 할머니에게 오뜨꾸띄르 의상(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맞춤복)에 들어갈 웨빙(벨트 등을 만들 때 쓰이는 튼튼한 직물로 된 띠) 제작을 부탁한다. 창업자인 코코 샤넬이 할머니의 웨빙 솜씨를 발견한 이래 샤넬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지금까지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명품에는 이처럼 숨은 이야기가 있고 숨은 사람이 있다.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 바로 장인 정신이다. 50년 동안 샤넬과 일하다가 지금은 샤넬 후계자 칼 라거펠트의 비밀 파트너가 된 구두장인 마사로도 그중 한 명이다. 마사로는 막 재봉을 끝낸 새로운 옷을 입은 모델이 오면 구두와 옷을 매치해보고 전반적인 룩을 확인한 후 즉석에서 구두 디자인을 결정한다. 라거펠트가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야”라고 외칠 때까지 그의 작업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이 숨은 조력자들이 외길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경영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명품에 열광하는가. 중국의 패션잡지 ‘샹글리라’ 편집장을 거쳐 럭셔리 브랜드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명품이 담고 있는 풍부한 가치 때문”이라며 “이는 호화나 사치라는 두 글자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명품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심리적 위안을 준다는 것인데, 예컨대 명품 카르티에 손목시계를 차고 싶은 욕망은 착용의 목적을 넘어서서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고 싶은 소유욕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동물보호법령의 규제로 인해 상아건반을 갖춘 피아노가 생산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에 일제 야마하와 가와이의 옛날식 그랜드 피아노는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피아노수집가 사이에서 혈안이 될 만큼 명품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미국산 스타인웨이앤드선스 피아노는 명품 중 명품으로 통하는데 여기엔 선진국과 개도국의 소비주체를 따라가는 명품 판매 전략이 개입돼 있다.

1960년대에 미국의 노동원가가 상승하고 일본 경제가 도약하면서 스타인웨이앤드선스는 2000달러 이하의 저급 피아노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중고급 피아노에 주력하면서 저급 피아노를 일본으로 이전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자 스타인웨이앤드선스는 자신들이 만들던 중고급 피아노 제작을 일본에 넘겼고, 일본은 저급 피아노 생산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인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으로 이전시켰다.

그렇다면 지금은? 저자는 “현재 피아노 생산사슬의 가장 말단은 중국”이라며 “중국인들조차 중국이 세계 최대의 악기 수출국이라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선진국일수록 양으로 승부하지 않고 질로 승부한다고 할 때 그 정점에 명품이 놓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명품은 허영인가, 거품인가. 저자는 결국 “장인을 육성하고 그들을 대우하는 사회적 기반과 정신적 여유의 중요성이 명품 문화를 만들어간다”며 “과시욕에 치우친 소비형태가 문화수준에 따라 점차 진화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예원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