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VS 이슬람원리주의… 이집트 이념대결
입력 2012-11-29 00:24
자신에게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헌법선언문이 이집트 전역에서 이념 대립을 촉발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이슬람 원리주의 진영에 대한 반발로 확산됐다.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반(反)무르시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간) 20여만 명으로 불어나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 촉구 시위 때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앞장선 가운데 시민들은 “무슬림형제단이 혁명을 빼앗아 갔다”고 외쳤다. 이집트 대법원은 무르시가 헌법선언문을 폐기할 때까지 파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고물가 등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들도 자유주의·좌파 세력에 합세했다.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진영도 조용한 반격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친정부 시위를 계획해 당초 양측 충돌이 우려됐으나 이번 시위는 일단 접었다.
반이슬람 원리주의 정서의 핵심에는 중동 최대 정치·사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6월 당선된 무르시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에 치우쳐 국정을 파행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선언문도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했다는 게 현지 언론의 관측이다.
헌법선언문 발표는 자유주의 성향 보좌진에게도 비밀리에 진행됐다. 기독교 학자 출신인 사미르 무르코스(53) 민주화담당 보좌관은 “무르시의 그림자 노릇을 그만두겠다”며 최근 사퇴했다. TV 보도를 통해서야 헌법선언문을 접했다는 그는 무르시 대통령의 탕평책으로 지난 8월 임명됐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가 될 것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를 안심시키기 위해 콥트기독교인과 여성이 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무르시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허약한 권력 기반 탓이 크다. 모하메드 하비브 전 무슬림형제단 부의장은 “무르시가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지 무슬림형제단과의 관계를 끝내지 못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무바라크 정권의 산물인 군부의 견제를 받아왔다.
높은 물가와 부실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헌법선언문 발표 직후인 지난 24일 스쿨버스와 기차 충돌로 어린이 50명이 사망한 사건은 국민 분노에 불을 붙였다. ‘마지막 파라오’로 불린 무바라크의 오랜 독재 탓으로 시민들의 불안정서도 강하다. ‘현대판 파라오’가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무르시 대통령의 독재 요소를 초기부터 제거하자는 시위대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