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처럼 향기로운 삶 되도록”… 대한성공회, 탈북여성 정착 돕는 ‘우물가 프로젝트’
입력 2012-11-28 18:34
28일 오후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고풍스런 느낌의 건물 옆 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컨테이너형 카페에서 한 50대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커피와 차(茶)를 만들고 있었다. ‘카페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이 작은 찻집에서 일하는 서미영(가명·50·여)씨는 2006년 가족과 함께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다. 하지만 서씨의 얼굴에서 탈북의 상처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카페 그레이스는 대한성공회 여신도 단체인 한국G.F.S(Gir’s Friendly Society)가 탈북여성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해 진행 중인 ‘우물가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이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 세계 23개국에 지부를 둔 G.F.S는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 든 여성들을 성폭력, 임금 착취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한국G.F.S에는 4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G.F.S는 1965년 설립돼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정착과 피해예방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탈북여성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최우선 보호대상이라고 판단해 후원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2008년 한국에서 열린 제19차 G.F.S 세계대회는 세계프로젝트로 ‘우물가 프로젝트’를 선정해 3만 달러의 ‘씨앗자금’을 제공했다. 한국G.F.S는 2년여의 연구 끝에 일자리 창출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탈북여성을 고용하기 위한 카페를 열게 됐다.
서씨를 포함해 현재까지 카페 그레이스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근무한 탈북여성은 모두 4명이다. 이전에 근무했던 탈북여성들은 각각 대학 진학과 지병, 다른 카페 취업 등의 이유로 카페를 ‘졸업’했다. 차순옥 한국G.F.S 회장은 “탈북 과정이 워낙 험하기 때문에 탈북여성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 매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이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탈북여성뿐 아니라 탈북자 가정의 실제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물가 프로젝트의 향후 과제는 탈북여성들이 다른 사업장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 사회와 기업의 조직문화를 교육하는 일이다. 실제 다른 카페에 취업했던 한 탈북여성은 문화적 차이로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우물가 프로젝트는 카페 운영 외에도 상담과 자녀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탈북여성을 돕고 있다. 장학사업과 상담인력 운영은 모두 카페 수입과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된다.
노정례 G.F.S 우물가 이사장은 “한국 사회와 교회가 탈북여성들이 오늘날의 한국 여성 가운데 가장 약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좋겠다”며 “교계에서도 일자리 제공 등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