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대선과 ‘측근 비리 5년 주기설’

입력 2012-11-28 21:58


당 태종 이세민이 장손황후의 오빠인 장손무기를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에 임명하려 하자 장손황후는 극구 반대했다. 장손황후는 “제 오라버니와 조카들이 권력을 갖길 바라지 않는다”며 한나라 여태후를 예로 들었다. 잔인한 보복을 일삼았던 한나라 여태후가 죽은 후 여씨 가문이 피의 숙청을 당한 것처럼 외척을 중용하면 나중에 장손가문이 멸족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몇 년 뒤 죽음을 앞둔 장손황후는 외척을 중용하지 말라고 다시 당부했다. 그는 “친정 사람들이 실력이 아니라 요행으로 높은 지위와 많은 녹을 누리고 있으니 언제 망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오빠 장손무기의 권력욕을 이미 간파하고 그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장손황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장손무기는 몇 년 뒤 손꼽히는 재상 위징의 자리를 물려받아 승상에 오른다. 그러나 결국 장손무기는 이세민의 후계구도에서 소신을 얘기했다가 작위를 박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자결하게 된다.

중국 드라마나 책으로 수없이 소개된 흔한 얘기를 꺼내는 건 장손황후처럼 최고 권력의 냉혹함을 알고 무겁게 처신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장손황후는 장손무기가 창업 일등공신이지만 외척이 권력을 쥐고 흔든다는 세간의 눈을 무서워했고, 권력 주변의 시기와 질투는 피를 부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화를 부르는게 권력의 속성

요즘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를 중심으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어떤 이는 정치적 소신일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포부로 뛰어든 이도 있겠다. 그러나 두 후보 주변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을 보면 몇 년 후가 자꾸 그려진다. 대선에 승리했다고 우쭐해하다 몇 명이나 검찰청을 들락거릴지 벌써 궁금하다. 기자들의 직업병인지 모르겠으나 ‘5년 주기’로 나타나는 친인척, 측근 비리를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권력이 꿀처럼 달콤해서 감옥행도 두렵지 않은 건지, 권력에 취하면 바보가 되는 건지 그들의 처신은 참 단순하다.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나도는 얘기를 들어보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문 후보 측은 박 후보 주변 인사들 10명을 거론하며 “이들은 단순한 ‘친박’을 넘어 ‘진박’”이라며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정권을 잡아서 조정을 농락한 10명의 환관들, 십상시(十常侍)가 떠오른다”고 비난했다. 그들이 실제 박 후보의 귀를 막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말이 떠도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징조다.

문 후보는 조금 늦게 대선후보로 떠오른 탓인지 아직 우려되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는 것 같다. 일부 ‘친노’ 인사들이 잠깐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다 혼쭐이 난 후엔 잠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문 후보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대선판에서 잘되면 한 자리 해보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자리만 바라고 한쪽 후보의 옆자리를 꿰찼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선 후보 측근도 심상찮다

대통령이 나눠주는 자리는 노른자위가 많다. 그곳엔 돈을 싸 짊어지고 줄을 서는 사람이 부지기수여서 잠시 한눈을 팔면 죄인이 되기 쉽다. 가장 부채가 없이 대통령이 됐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측근 비리와 권력 암투가 적지 않았으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 주변은 그렇게 썩을 것이란 게 민초들이 아는 상식이다.

앞으로 20일만 지나면 새로운 국가권력이 탄생할 텐데, 장손황후처럼 일등공신을 중용하지 말라고 누가 간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사람과는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권력 깊숙이 들어가면 보통 말로가 좋지 않다. 이 정부 측근들도 그걸 몸으로 말해줬다.

노석철 사회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