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 결의안 첫 합의 채택… ‘인권 유린국 北’ 외교 무대서 고립

입력 2012-11-28 22:01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컨센서스(의견일치)로 채택한 것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북한이 선점한 어젠다에 말려들지 않고 인권과 민생이라는 ‘가치’ 문제를 본격 제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그동안 월등한 미국과 남한의 재래식 전력과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에 대응, 자위권 차원에서 핵 무장과 미사일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변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일부 개발도상국의 공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국 국민을 고문하고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인권유린국이라는 오명이 높아지면서 국제무대에서 최소한의 ‘정당성’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중국까지 결의안 채택에 반대할 수 없는 입장에 몰린 것은 북한의 심각한 ‘외교 고립’을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27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상정을 주도한 것은 유럽연합(EU)이었다. EU를 대표해 발언대에 선 사이프러스 대표는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북한 당국은 결의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주민들에 대한 모든 인권탄압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결의안에서 6개 분야에 걸쳐 북한에서 이뤄지는 가혹한 고문과 처형, 표현과 이동·집회·결사의 자유 침해, 여성과 어린이·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식량난 등 북한의 열악한 인도적 상황과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 상봉의 시급성을 위해 북한은 국제기구와 협력해 즉각적인 개선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 내 수용소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내용과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 등이 추가됐다는 점 등에서 결의안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북한은 결의안 컨센서스 채택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날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송 참사관은 3차례나 발언권을 요청해 “이 결의안은 내정 간섭이며 한 국가에 대한 정치적 테러”라고 비난했다.

그는 “법률적 의미에서든 실제든 북한에서 결의안에 언급된 어느 형태의 인권침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결의안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2005년 유엔에 첫 상정된 이후 올해까지 8년 연속 채택됐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12개국이 찬성했으며 반대 16표와 기권 55표를 기록했다. 올해 콘센서스 채택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까지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유엔인권이사회도 지난 3월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표결 없이 회원국 간 합의로 채택한 바 있다. 유엔은 이날 북한의 우방국인 이란과 시리아에 대해서도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