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저성장시대 Re+가 답이다

입력 2012-11-28 19:34


세계경제가 급속하게 저성장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이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2.7%, 2.5%, 2.4%로 전망하는 등 우리 경제가 2%대의 저성장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고, 삼성과 LG는 투자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경제 저성장 기조는 사상 처음으로 외래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한 한국의 관광산업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관광산업은 체질적으로 외부 환경에 매우 허약하다. 환율 등 경제상황은 물론 사스나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도 관광산업이 얼어붙는다는 것은 몇 년 전의 쓰라린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 저성장시대를 맞아 관광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녹색관광의 비전과 과제’ 포럼에서 경제 저성장시대에 한국관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박주영 연구원은 주제발표에서 “경제 저성장 기조는 관광개발 민간투자 감소, 관광 소비성향 위축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신규개발을 자제하고 기존 자원의 재활용과 시설의 복합 이용, 유휴자원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Re+(재생)’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녹색관광에서 Re+ 전략이 주효할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강조했다.

독일의 뒤스부르크는 독일 최대 철강기업 티센의 본거지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철강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한 곳이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철강 시설의 노후화와 아시아 철강업체의 약진으로 독일 철강산업이 급속히 쇠락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티센의 옛 제철소 시설은 Re+를 통해 환경공원으로 거듭났다. 광석 저장 벙커는 암벽 훈련 시설로 개조됐고, 가스저장탱크는 물을 채워 다이빙 센터로 만들었다. 공장 사무실은 유스호스텔로, 터빈공장은 컨벤션 센터로 탈바꿈하면서 ‘공장 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한 해 70만명으로 늘었다.

녹색관광의 대명사인 제주올레길은 한국을 대표하는 Re+의 산물이다. 제주올레길 방문객은 한 해 100만명으로 제주행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민가나 여관을 개조해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숙박객들로 넘쳐나고 리모델링을 한 재래시장은 올레꾼들로 매출이 40% 이상 늘었다. 반면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 사설박물관과 골프장 등은 썰렁하다 못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영업 몰락, 소비심리 위축, 경제 불안 등으로 힘든 시기가 지속되자 가족과 함께 저렴한 비용으로 여가를 즐기려는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 W-B-C(Walking, Bike, Camping)여행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전히 시설 투자 위주의 개발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광도시였던 몇몇 지자체는 국고까지 지원받아 경쟁적으로 비슷비슷한 탄광촌을 만들었거나 조성 중에 있다. 수요예측에 실패한 탓에 일부 시설은 찾는 관광객이 없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은 또 새로운 시설물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혈세를 쏟아붓고 있다. 모 지자체가 스키리조트로 파산위기에 처했는데도 인근 지자체들은 여전히 스키리조트 건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경제 저성장시대의 녹색관광은 Re+ 전략을 통한 유휴자원 재활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기존의 시설과 공간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건축폐자재에 의한 환경파괴를 예방하고, 신규투자로 인한 투자 남발과 자원 낭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제주올레길에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