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글로벌 슈퍼갑

입력 2012-11-28 19:34

국민연금공단의 성장세와 위상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국민연금공단을 출입하던 1999년쯤의 일이다. 국민연금이 가장 좋은 ‘노후 보장 상품’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는 훨씬 낮았을 때다. 언론은 주로 국민연금 자산 운용 상황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뤘다. 공단도 언론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자세로 대했다. ‘연기금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많이 냈다’는 말을 듣고 취재를 하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땐 그랬다.

그런 공단이 국민 사랑을 받으며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연기금 규모는 지난 6월 말 현재 367조원에 달한다. 일본(GPIF) 1551조원, 노르웨이(GPFG) 685조원, 네덜란드(ABP) 378조원에 이어 세계 4위를 달리고 있다. 다른 나라 연기금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반면 국민연금은 ‘젊은 연기금’에 속한다. 연기금은 2020년 1000조원을 돌파하고, 2043년 2465조원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국민연금공단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슈퍼갑’으로 통한다. 전광우 이사장이 지난 6월 런던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단이 사들인 빌딩에 입주한 HSBC 금융그룹의 총수가 건물 앞까지 나와 전 이사장을 깍듯하게 맞은 것이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회사의 최고위층 150여명은 런던사무소 개소식에 들러 전 이사장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최근 사례는 국민연금공단의 높아진 위상을 더욱 실감케 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3일 한국에서 자산운용 사업부문을 전격 철수키로 결정했다. 방문 중인 미국에서 기사를 본 전 이사장은 그날 잡혔던 골드만삭스 관계자들과의 점심약속을 취소했다. 골드만삭스가 뒤늦게 면담을 요청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산운용 업무를 외부에 위탁할 때는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감안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다급해진 골드만삭스는 28일 고위층 인사를 서울로 급파해 전 이사장을 ‘알현’하기에 이르렀다.

공단은 지난 9월 현재 61조3000억원(15.9%)인 해외투자 비중을 앞으로 5년간 20% 이상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돈벌이가 신통치 않은 해외 금융회사들은 전 이사장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야 할 판이다. 해외에서 그의 위상이 한국 대통령보다 세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난 5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0%로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공단의 선전을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