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환경을 초월한 감사
입력 2012-11-28 18:06
골 3:15∼17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고상한 걸작품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걸작품이 죄 때문에 문제가 생겨 최고의 명품 영혼에서 질 낮은 영혼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명품 영혼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영혼입니다. 탁월한 영혼의 질은 감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마음에서 시작해 언어로 전달되고 이 언어는 다시 행동으로 나타나며 이런 행동은 영혼의 질을 높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질이 탁월하다는 것은 그 영혼이 성숙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예수님의 깊은 영성을 배웠던 베드로는 성숙해진 다음 쓴 글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벧전3:9)고 당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오늘 본문은 차가운 감옥 안에서 쓴 옥중 편지입니다. 그는 자유의 몸이 아닌 쇠사슬로 매인 채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의 나이 역시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라 노년의 나이였습니다.
빌레몬서 1장 9절을 보면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감옥이라는 환경을 초월해 감사하면서 또한 글을 읽는 형제들에게도 환경을 초월해서 감사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환경을 초월한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첫째,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15절에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날마다 복잡하고, 짜증나고, 참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감사의 조건은 참혹하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일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찾으면 감사의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릴 때 환경을 초월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삶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의 몸은 비록 옥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의 믿음의 뿌리는 예수님께로 내리고 있었고,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기뻐할 수 있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문패에 내 이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쓰여져 있을 때 환경을 초월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내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이미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이름이 없듯이 이미 죽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의 이름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김문철 서울 삼양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