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지금 대선 현장에선] 박근혜의 오른손

입력 2012-11-27 22:16


26일 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단독 TV토론에는 이색적인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박 후보가 달려드는 할머니를 피해 양손을 허리 뒤로 뺀 듯한 사진이었다. 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던 이 장면은 한동안 누리꾼 사이에서 ‘박근혜 악수 거부’란 제목으로 회자됐다. 박 후보는 이날 “제가 손이 좀 부실한데 어떤 어르신이 제 손을 꽉 잡아서 뒤로 손을 잡고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분이 오셔서 손을 내미신 건데 이를 사진으로 찍어 악랄하게 유포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후보는 평소 오른손을 주무르는 버릇이 있다. 악수를 많이 하고 다닌 탓에 고질병이 된 통증 때문이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찜질용 얼음을 사기도 한다. 박 후보를 잘 아는 인사들은 후보와 악수를 나눌 때 손을 꽉 잡지 않는다. 살짝 손만 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측근은 27일 “요즘은 가만히 있어도 손이 아려와 잠을 못 잘 때도 있다고 한다. 내가 살짝 손만 건드려도 움찔하는데 아주 골병이 든 것 같다”고 전했다.

박 후보의 손 통증은 2004년 당 대표 시절 총선을 치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낙인에다 ‘노무현 탄핵 역풍’까지 맞으며 존립 자체가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흰색 붕대를 감은 오른손은 이때 등장했다.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탄생한 순간이었고 이후 전국 단위 선거유세 때마다 박 후보는 ‘붕대 투혼’을 선보였다. 4·11 총선에서도 선거운동 돌입 사흘 만에 붕대 신세 덕분에 당은 과반의석을 얻었다.

박 후보는 최근 아픈 오른손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과 스킨십을 나눈다. 손뼉을 마주칠 때도 있고 왼손으로 악수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유세장에서 일일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왼손 악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새누리당에 박 후보의 붕대 감은 손은 헌신·투지·승리의 상징이지만 본인에게는 ‘제발 오른손을 잡지 말아 달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