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한상인] 위대함과 순수함

입력 2012-11-27 19:10


세계의 대도시들은 대개 강을 끼고 발달되었다. 유명한 도시들은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강 이야기를 갖고 있다. 서울의 한강도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 있어서 세계의 유명한 강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한때 한강에 운하를 만들어 5000t급의 배를 운항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한강은 거대한 배를 띄울 수 있을 만큼 수량이 많고 강폭이 넓다. 나룻배 정도가 아닌 거대한 배를 운항할 수 있는 강이 위대하다면 한강은 위대하다. 한 국가의 수도를 흐르는 강 중에서 한강만큼 위대한 강도 거의 없다.

그러나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은 순수하지 못해 그 물을 마실 수 없다. 한강에서도 마실 수 있는 물을 만나려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류에서 약 500㎞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맑은 물이 솟아난다. 참으로 순수한 물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종이배는 몰라도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순수하지만 위대하지는 않다.

큰일에만 매달려 구름 위 걷는 삶

7명의 대선후보들이 등록하면서 대선 경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등록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삼자구도였지만, 이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양강구도로 좁혀졌다. 대선후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공약의 물줄기 위에 ‘새 희망의 한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띄운다.

지난 11월 22일 한국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개봉되었다. 주인공 우수씨는 고아로 자라나 가난과 분노로 얼룩진 삶을 살아갔다. 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고 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아이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 작은 만남이 우수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중국집에서 철가방을 들고 다니며 배달해서 번 돈 70만원을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손아동을 후원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7년을 보내다 작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살던 고시촌의 쪽방에 성경 시편 23편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본 영화감독은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위대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순수하지는 못하다. 순수하면서도 위대한 분들은 역사상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지는 못할지라도 순수할 수는 있다. 순수한 삶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면 보람찬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된다. 큰일에만 매달려 구름 위를 걷는 삶은 망상에 빠져 자신과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인생

옛날에 기러기 목각을 잘 만드는 장인이 살고 있었다. 그가 만든 기러기는 어찌나 생동감이 있던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기러기 목각을 보면서 그의 솜씨면 틀림없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 말을 들은 목각장인은 ‘그래 날아가는 기러기를 만들자’라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날 수 있는 기러기 목각을 만들지 못했다. 어느 날 좌절과 낙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던 그에게 날개를 다쳐 파닥거리는 참새가 눈에 띄었다. 그는 그 참새가 상처 입은 자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새를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줬다. 며칠 후 그 새는 푸드덕 하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10년 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인 기러기 목각은 날지 못했지만 불과 며칠 정성을 쏟은 작은 참새는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간 것이다.

옛사람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외쳤다. 허망한 위대한 생각을 버리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순수한 사람이 되자. 순수한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와 국가에 생명수가 흐른다. 순수함이 위대함을 능가한다.

한상인 한세대 교수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