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뉴욕 한국타운의 ‘실험’

입력 2012-11-27 19:09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였던 지난주 뉴욕에 다녀왔다. 뉴욕 관광의 중심인 타임스 스퀘어 등 맨해튼 도심을 둘러본 뒤 남쪽의 차이나타운에 들렀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멀지 않은 차이나타운은 아시아를 제외하고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가장 일찍 정착한 집단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주로 중국 남부 광둥과 푸젠성, 홍콩 출신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지금도 9만∼10만명의 중국계 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뉴욕 도심에서 울긋불긋한 색깔의 한자 간판과 자갈치시장을 연상시키는 어시장, 건어물·한약재 상가를 보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중국식당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실내 디자인과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의자와 탁자 등은 ‘유서 깊은 곳’임을 알리는 ‘자산’으로 봐주기로 하자.

그러나 음식 시중을 드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의 서비스는 아무리 좋게 봐도 60점 이상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메뉴에 대한 질문과 다른 요청에 친절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뜨거운 중국 차 외에 찬물을 부탁한 딸은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물을 마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황당한 일은 계산할 때 일어났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황해 하는 기자에게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길 건너편의 씨티은행 지점을 가리켰다. 결국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수수료를 내고 돈을 인출해 계산했다. 뉴욕 한복판에 신용카드를 쓸 수 없는 식당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차이나타운 인근 이탈리아인들의 초기 정착지인 ‘리틀 이태리’도 썩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다. 유서 깊은 이탈리아 전통 제과점이라고 들른 곳에서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메이시백화점 부근 32번가에 자리 잡은 ‘한국타운(Korea Way)’은 확연히 달랐다. 추수감사절 저녁엔 식당마다 손님들로 북적였다. 간판에서부터 실내 디자인, 조명 등 모든 면에서 세련되고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종업원들의 빠른 서빙과 친절이 두드러졌다.

한국타운 중간에 자리한 한식전문 푸드코트(food court)는 한인들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문 연 지 2년 됐다는 이 푸드코트에는 찐빵과 만두, 떡볶이, 비빔밥, 어묵, 라면,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8개의 가게가 각기 고유의 브랜드를 내걸고 성업 중이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어느 한인 식당보다도 현지 미국인으로 보이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학생 음식(Korean School Food)’이라는 설명이 붙은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이 가게 종업원은 “미국인의 입맛에도 신경을 쓴 퓨전 음식인 데다 매장이 깨끗하고 팁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점 때문에 미국인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마간산 격으로 스친 경험만으로 민족별 집단거주지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한인 식당·가게의 디자인과 서비스가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뉴욕에서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음식점의 평균 존속기간이 1년을 채 넘지 않는다는 살인적 경쟁 속에서 단련된 한국인들의 근성과 창의성이 해외에서 빛을 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