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위기에 무슨 돈으로 부채탕감하나
입력 2012-11-27 19:10
GDP의 200% 넘는 국가총부채 적극 관리해야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가계가 진 빚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어제 내놓은 ‘유로존 위기의 시사점과 교훈’ 보고서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정부부채와 기업부채, 가계부채를 합한 국가 총부채는 2000년 152%에 불과했지만 2007년 202%, 2010년 215%로 급증했다. 금감원은 총부채비율이 300%를 넘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과 비교하면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정부부채는 GDP의 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낮다. 하지만 증가속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고령화와 통일비용 등을 감안하면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복지제도를 더 이상 도입하지 않더라도 정부부채가 2060년에는 GDP의 218.6%로 2경(京)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남유럽 국가들이나 일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부채 한도제를 도입해야 한다. 나랏빚 한도를 설정해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한도를 상향조정할 때는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정부 보증채무와 공기업부채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정부부채 개념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부 보증채무와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 공기업부채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정부부채가 2010년 말 기준 1848조원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영국처럼 국가채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국가채무관리기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기업과 가계가 어려워져 빚을 못 갚게 되면 정부부채로 부담이 넘어갈 수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기업들은 과다한 차입경영에 의존한 웅진그룹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이다. 가계부채는 외환위기 이후 1999∼2010년 평균 11.7%씩 늘면서 GDP 증가율(7.3%)이나 가처분소득 증가율(5.7%)을 웃돌고 있다. 과다한 가계부채는 소비를 억눌러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부동산과 연계된 가계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면 국가경제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총유동성 관리와 함께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이 90%를 넘는 취약한 대출구조를 바꾸기 위해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 대출에 대한 강도 높은 유인책을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의 부실화를 막으려면 성장엔진을 다시 돌려 기업과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높여주는 게 급선무다.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저신용자·저소득자 등에 대한 부채탕감 방안 등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재정만 축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