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애기봉 성탄 트리

입력 2012-11-27 19:19

크리스마스트리 풍속은 16세기 독일의 중산층 신교도들 사이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성탄 트리에 촛불을 켜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겨울 설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눈을 머리에 인 전나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광경을 보고 경외감을 느낀 루터가 가족에게 보여주려고 거실에 나무를 세우고 초를 달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독일계 이주민들이 트리 장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 주민들은 백안시했다. 흥겨운 캐럴이나 트리 장식이 성탄을 모독하는 이교도의 전통이라고 봤던 올리버 크롬웰의 엄격한 청교도식 태도를 따른 때문이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1695년 장식물을 다는 등의 경배 행위에 벌금을 물리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미국에 성탄 트리가 확산된 것은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 덕분이다. 하노버 왕가 출신으로 독일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왕은 어릴 때부터 성탄 트리에 익숙했다. 1846년 성탄 트리 앞에 선 여왕 가족을 묘사한 목판화가 영국 언론에 보도되자 곧바로 미 동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성탄 트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서부전선 최전방인 김포 애기봉(愛妓峰)에 성탄 트리가 세워진 것은 1954년이었다. 71년에는 30m 높이 등탑이 설치돼 매년 겨울 북녘 동포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2004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을 중지키로 한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의 합의에 따라 애기봉의 불이 꺼졌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직후인 2010년 점등이 재개됐으나 지난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올해도 이곳에서 성탄 트리를 보기 어렵게 됐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가 최근 점등 행사 취소 의사를 국방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선교연합회는 애기봉과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3곳에 성탄 트리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지역의 반대에 부딪쳤다. 북한과의 군사 충돌, 대선을 앞두고 ‘북풍 공방’이 우려된다는 논리였다.

인명 피해가 생긴다면 성탄 트리 설치를 재고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북풍 우려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체제를 맹비난하는 대북 전단물도 아니고 그저 조용하게 빛만 발하는 트리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 타격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성탄 트리를 선전도구로 해석한 남북 합의가 애당초 문제였는지 모른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