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산모사망비율 증가와 그 해법

입력 2012-11-26 18:36


예전에는 임신부들이 아이를 낳으러 방에 들어갈 때 벗어 놓은 신발을 돌아보고 가지런히 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우려와 함께 건강한 해산을 기원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출산과 관련되어 산모가 죽는 일이 그 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학이 발달한 지금에야 누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까 싶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산모의 사망 비율 자체는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줄어들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령 산모 군에 있어선 그 비율이 더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흔히 산모사망비율을 ‘모성사망비’라고 하는데, 이는 출생아 10만 명당 사망한 산모 수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08년 8.4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35세 이상 고령산모의 모성사망비가 이후 증가해 2011년 말 현재 17.2명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분만 후 출혈, 임신중독증 같은 고혈압성 질환, 양수색전증 등 직접적인 모성사망에 의한 것은 1.6배 증가했고, 고령임신 등 고(高)위험 산모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간접적인 모성사망비율도 6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산부인과 전공의와 분만을 돕는 의사의 감소로 고위험 임신 및 산모 관리 능력이 떨어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출산 인프라가 총체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다. 산부인과는 낮은 수가 외에도, 과다 출혈 등 위험도가 높은 분만 진료의 속성상 자칫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많고, 응급진료는 물론 필수적 야간 당직 등으로 최근 6∼7년간 전공의 지원 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 수는 물론 분만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는 시·군·구가 무려 50개 지역에 이른다. 심지어 대학병원마저 수련의 부족 등 인력난으로 정상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다. 전공의를 마치고 신규 배출되는 전문의 수도 2001년 270명에서 올해 90명 선으로 크게 감소된 상태다.

고위험, 고령산모 관리를 도맡아주어야 할 대학병원 산부인과가 전공의 없이 교수급 의료진만으로 운영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분만장을 폐쇄하거나 진료기능이 약화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국립 대학병원에서조차 전공의 부족으로 산모를 충분히 돌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산모를 민간 산부인과 병·의원으로 돌려보내는 의료전달체계 전도 현상까지 일어난다.

응급상황에 놓인 고령 및 고위험 산모 관리에서 꼭 필요한 산부인과 의사의 절대적인 부족은 모성사망비 증가를 부채질하는 악성 위험인자다. 보건의료정책 당국은 하루 빨리 산부인과 의사들의 장기수급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선행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