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 일반공채 합격한 1급 중증장애 박기범씨

입력 2012-11-26 22:18


1급 중증장애를 딛고 한국은행 일반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박기범(23·성균관대 경제학과4)씨. 그는 선천성 색소성 망막변성(RP)으로 1m 앞 물체도 희미한 윤곽만 보이는 시각장애인이다. 시력측정이 불가능해 맹인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중대뇌 동맥 뇌출혈을 앓으면서 왼쪽 팔과 다리까지 몹시 불편한 중증장애인이 됐다. 하나의 장애로도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주위의 걱정은 그에겐 이미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26일 오후 1시20분 광주역에서 박씨를 어렵게 만났다. 30분 뒤 서울행 KTX를 타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그는 밝은 표정으로 침착하고 조리 있게 답했다.

그는 “1998년 IMF 환란 같은 국가적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금융시스템 구축에 기여하고 싶다”며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한국은행의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종합기획직 일반 공채시험에서 중증장애인의 합격은 한국은행 창립 62년 만에 박씨가 처음이다. 일반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3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증을 손에 쥔 것이다.

박씨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돋보기’를 사용하며 공부했다. 박씨는 지난달 20일 한국은행 입사시험 때도 유일하게 돋보기를 사용하는 수험생이었다. 결과는 합격의 영광으로 돌아왔다. 그의 학구열에 시각장애와 신체 절반을 불편하게 하는 뇌병변도 결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박씨는 “화순 능주고 입학 때 성적이 180명 중 160등이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이를 악 물고 노력해 졸업 때는 5등이 됐다”고 소회했다. 그는 “시험문제를 빨리 읽지 못할 바엔 남들보다 먼저 답을 구할 수 있도록 암기력과 암산력을 기르는 데 치중했다”고 장애 극복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과정을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 2월 졸업 평균학점은 3.9점으로 교양과목을 제외한 경제학 관련학점은 모두 A학점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2008학번으로 대학 2학년 때부터 서울 명륜동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땀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줄곧 한국은행 입사의 꿈을 키워 왔다.

박씨는 “지난 22일 합격을 확인하신 부모님께서 ‘이제 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말씀하실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맏아들인 그에게는 여동생(21·조선대 원자력공학과2)이 있으며, 가족에게 항상 웃음을 선물할 만큼 쾌활한 성격이다. 박씨의 아버지 삼기(57)씨는 전남 화순에서 염소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박씨는 장기침체에 빠진 국내 경제상황에 대해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박씨는 “한국은행 총재 등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을 꿈꾸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조연, 튼튼한 버팀목이 될 두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며 “거시건전성 분석국으로 부서지원을 하겠다”고 소박한 꿈을 다시 한 번 다졌다.

광주=글·사진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