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그대 심장이 뛰고 있는가

입력 2012-11-26 17:18


외환위기(IMF)를 졸업하던 9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활기와 열정이 넘쳤다. 벤처 사업 열풍, 사상 초유 저금리 시대, 디지털 산업의 진보, 대형할인 마트, 온라인 홈쇼핑의 인기는 소비 심리를 자극하며 경제 활황을 이끌었다. 현대인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스펙과 실력만 잘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2003년에 카드대란 사태가 터졌다. 무차별적인 카드 공급 과잉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 카드대란이 사회 분위기를 한순간에 냉정하게 가라앉혀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인생 2막이나 인생 하프 타임을 두려워하며 꿈의 보폭을 좁혔다.

그러다 2008년에 미국 월가에서부터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인간이 지닌 휘장을 모두 벗겨 버렸다. 그때 사람들은 개인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 상황과 맞물리며 스스로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는 론다 번의 ‘시크릿’이 열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 책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자리, 소득, 내 집 마련, 결혼, 자녀교육,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을 하나하나 포기하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경제 위기의 파고가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냉소에 지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항우울제와 같은 위무의 책과 강연이었다.

특히 최근엔 불교계 승려들의 저술들이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진입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과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저술들이 항우울제와 같이 환경에 수동적인 순응과 이해를 가르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생, 사랑, 관계, 만남 등 삶과 아주 친숙한 소재들을 가지고 들려주는 솜사탕 같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까지에 불과하다.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목회자의 설교도 고난과 맞서 싸우는 야성의 신앙을 가르치기보다는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마사지 설교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아무런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며 오히려 성도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가 선지자적 사상을 가지고 시대 마인드와 사회적 흐름을 바꿔야 한다. 무력한 현실 순응이나 모르핀 같은 위무의

메시지를 거부해야 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역설적 믿음의 본질과 야성의 신앙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심리학의 외피를 두른 항우울제와 같은 마사지 설교가 아니라 고난에 순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야성과 역설적 본질을 더 외쳐야 한다. 그럴 때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연어처럼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히려 역류하는 꿈틀거리는 야성의 생명력으로 고난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 그대는 항우울제와 같은 메시지에 마비되어 있는가, 아니면 시류에 역류하는 야성과 본질로 심장이 뛰고 있는가.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