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디지털 휴식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2-11-26 21:17


내년 고3이 될 딸아이는 최근 가족 공용으로 구입한 태블릿 PC를 단번에 자기 전유물로 만들었다. 자신의 스마트폰 카카오톡 대화가 공부에 방해된다며 카카오톡 계정을 태블릿 PC로 옮길 때는 기특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늦은 밤 독서실 다녀와서는 태블릿 PC를 통해 각종 프로그램을 섭렵하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런 딸아이에게 “그만 끄고 자라”고 하면 “휴식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며 발끈하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과부하로 쉴틈없이 피곤한 뇌

각종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군상은 곳곳에서 목도된다. 헬스장에서 보라. 러닝머신에서 이어폰으로 MP3 음악을 들으며 앞에 있는 TV를 시청한다. 그러면서 가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지하철 승객의 모습은 거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동영상을 감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테나를 쫑긋 세운 채 끊임없이 디지털 기기로 정보를 흡수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행위를 ‘휴식’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디지털 과부하의 위험성을 오래 전부터 경계해 왔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마크 버먼은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생기를 되찾는다고 여기지만 스스로 피곤만 불러오는 꼴”이라고 말한다. 운동을 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하거나 지하철에서 동영상을 감상할 때 즐거움을 느낄지라도 뇌는 혹사당한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틈틈이 휴대전화를 확인만 해도 뇌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지난해 CNN은 학술논문을 인용해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하루 평균 34회씩 습관적으로 전화기를 확인한다”고 보도했다. 현대인들은 휴대전화만으로 하루 평균 34회씩 뇌를 못살게 군다는 말이다.

뇌가 잠시도 쉬지 않고 혹사당하면 특히 청소년의 학습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로렌 프랭크 교수는 학업에 뇌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쥐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새로운 미로를 탐색한 쥐들 가운데 휴식을 취한 쥐는 학습뇌파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한 쥐에겐 나타나지 않았다. 즉, 공부 후에 휴식을 해야만 그 내용이 오래 기억된다는 결론이었다.

휴식은 학습능률을 높이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21세기의 시대적 요청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 21세기는 전통적인 제조업 사회가 아니라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지식경제를 생산하는 창조 사회다. 그런 사회는 근면성실한 장시간 노동자가 아닌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창의적인 인재는 휴식과 여가를 잘 활용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온 우리 문화는 휴식은 시간낭비라며 가볍게 여긴 점이 있었다. 잠시 멈추는 시간은 퇴보라 여기고 스스로를 들볶았던 시절, 바빠야 미덕으로 찬양되고 휴식은 나태함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빨리빨리 문화’가 디지털 시대에 더욱 기승을 부려 우리 뇌를 혹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휴식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재창조 위해 푹 쉬는 게 상책

특히 디지털 휴식이야말로 재창조를 위해 가장 우선시돼야 할 휴식이다. 이제 무심코 디지털 기기의 노예가 되고 있는 현대인들 스스로 디지털 휴식을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정시간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같은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이 같은 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먼 곳으로 여행을 가 조용히 독서하며 토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 지하철에서 아무런 불만이 없던 런던 시민들. 지난여름 런던올림픽 취재 기간 그 지하철을 매일 타고도 불편함을 몰랐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체육부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