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농협 단위조합, 그동안 무슨일이… 성과급 잔치
입력 2012-11-26 00:34
이사회는 금리조작 면죄부, 감사委는 징계 제 식구 봐주기
농협의 무더기 대출금리 조작 과정에서 단위 농협 이사회가 실무 직원들의 면책 조항을 의결시키는 등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범법 행위를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농민들의 피 같은 돈을 가로챈 범죄가 자체 조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농협 조합감사위원회는 은폐·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단위조합 이사회가 비리 독려 위해 실무자 면책 의결=“금리 변경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련 직원의 신분·금전상 책임을 면하게 해주겠습니다.” 2009년 광주에 있는 한 단위농협의 3차 이사회에서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연동 대출의 금리 조작을 위해 기상천외한 안건이 의결됐다. 대출 금리 조작에 일부 직원이 반대하자 이들의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이사회가 결정한 것이다. 결국 산하 각 지점들은 지난해 9월 18일까지 고객으로부터 대출 조건을 변경하는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단순 전산 조작만으로 대출 1305건에 대해 가산금리를 최대 연 3.2%까지 추가 인상했다. 이들이 이 기간 고객으로부터 과다 수취한 이자는 8억2992만원에 달한다.
서울의 한 농협은 2008년 12월 긴급 지점장 회의를 열어 금리조작을 독려한 뒤 그 결과를 갖고 우수 또는 부진 사무소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 농협은 1474건에 대해 15억3917만원이나 이자를 더 받았다. 경남의 또 다른 농협 전무 김모씨는 2009년 1월 실무직원들이 “사전 고지나 특약 없이 금리조작을 할 경우 여신거래기본약관에 저촉된다”고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무 명의로 각 지점에 업무연락을 보내 금리 조작을 강행했다.
단위 농협들이 이처럼 금리 조작을 강행한 것은 금융위기 직후 CD 금리가 연 6%대에서 2.4%대로 하락하면서 대출 수익률이 악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출금리를 최대 연 3.93%나 고객 몰래 올린 뒤 단위 조합당 최대 24억3500만원까지 이자를 더 받아 챙겼다. 농협은 검찰이 지난 1월 전국적인 수사에 착수하자 뒤늦게 과다 수취된 이자를 일부 환급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축산인 돈 가로채 성과급 잔치=불법으로 챙긴 돈은 고스란히 조합 실적에 반영된 뒤 특별 성과급 등으로 빠져나갔다. 조합감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 조작을 주도한 단위 농협 임원 94명 중 60명은 금리 조작이 이뤄지던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억3235만2000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조합별로 임원 1인당 적게는 연간 270만원에서 많게는 연간 2700만원의 부수익을 챙겼다.
가장 많은 성과급을 챙긴 대구의 한 조합 상임이사는 3년 동안 6848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경남의 한 조합장도 같은 기간 6000만원의 성과급을 챙겼고, 이번에 재선출된 한 조합장 역시 3년 간 총 3283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농협중앙회가 2009년 만든 ‘직원급여규정(모범안)’에 따르면 특별성과급은 ‘경영성과 또는 업무실적이 우수한 경우 이사회 의결을 거쳐 통상임금의 100% 이내에서 지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제는 농협조합 임원들의 성과급이 사실상 대출금리 조작으로 거둔 업무 실적에 따른 보너스라는 점이다. 금융위기로 각 단위 조합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농민·축산인의 고혈을 빨아 실적을 올린 후 본인들은 거액을 삼킨 것이다.
◇농협중앙회 은폐·축소 급급=대출금리 조작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지난 1월 19일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가 열렸다. 5억원 이상 고액의 이자를 과다 수취한 17개 농·축협에 대한 징계를 위해서였다. 전체 비리 임직원 1000명(임원 94명, 직원 906명) 가운데 임원 25명, 직원 240명이 징계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징계를 전면 보류했다. 위원장과 일부 위원이 “고객 입장에서 보면 피해가 분명하다”면서 징계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나머지 위원들은 “저축은행 비리보다는 양심적이다” “부당 수익금을 조합원에게 배당했으니 사익을 취한 것이 아니다” 등으로 맞섰다. 검찰 수사 대상이 아닌 조합의 비리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징계를 거부했다. 결국 위원장을 제외한 4명의 감사위원 가운데 3명의 뜻에 따라 징계 보류가 의결됐다.
대출 비리 사태가 드러난 지 1년이 지났지만 농협이 징계한 임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시중은행의 경우 비슷한 비리를 저지르면 지점장과 임원들이 면직 처리되지만 이들 일부 비리 조합장은 재선출되는 기현상까지 나타난 것이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르면 비리 조합장이 징계면직 또는 개선(改選·사실상 해고)의 징계를 받았을 경우 5년간 임원으로서의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설사 이에 미달하는 징계를 받더라도 조속한 징계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비리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지만 조합감사위원회는 이를 모두 외면했다.
강준구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