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앞 소이산서 매일 평화기도회 여는 정지석 목사 “이 땅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 깨달아”
입력 2012-11-25 18:31
강원도 철원읍에 위치한 소이산은 등산로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정확히 1339걸음이었다. 이곳에서 정지석(53) 목사는 매일 오후 3시,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평화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는 지난 23일 정 목사와 함께 ‘소이산 평화기도 순례’에 동행했다.
소이산은 2000년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이 북상한 후에도 10여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얕은 산이다. 지난해 12월 둘레길이 완공되면서 일반에 개방됐지만 소이산은 여전히 ‘군사작전지역’이다. 화지리에서 소이산에 이르는 길에는 지뢰 매설 지역이 눈에 띄는 등 군사적 긴장이 남아 있었다.
정 목사는 지난해 12월 9일부터 소이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망대까지 20분, 전망대에서 10분간 그는 분단된 조국에 대해 가지고 계실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 평화에 대해 묵상하며 침묵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마칠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23일처럼 혼자 순례에 나서는 날도 있지만 지금까지 1000여명이 순례에 참석했다.
기도를 마친 정 목사는 “같은 말과 같은 역사를 가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60년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며 “그러나 지난주 백마고지역(경원선)이 개통되는 것을 보면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또 얼마나 급하신지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소이산 정상에서는 흐린 날씨에도 북한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정 목사는 날씨가 맑은 날엔 북쪽에서도 자신이 보일 것이라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는 “내년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때 수천명의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분단의 상징인 이곳 철원에서 평화행사를 개최한다면 세계가 한반도의 아픈 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교통 문제(경원선)를 해결해 주신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전공하고,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평화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크리스천 아카데미, 청담동 새길교회 등 다양한 곳에서 사역을 했다. 그가 철원행을 결심한 것은 2010년 새길교회 목회를 사임하고 올랐던 미국 유학길에서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펜들힐 영성평화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그는 철원에서 평화사역을 하라는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9월 3일. 태어나 처음으로 철원 땅을 밟은 정 목사는 “처음에는 너무 막막해 도망가고 싶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막막했던 노아의 순종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평화의씨앗들-철원교회를 개척한 정 목사는 내년 3월엔 국경선 평화학교를 열 예정이다. 국경선 평화학교는 평화활동가와 북한 개방 시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다. 학생들은 철원에서 3년간 평화학과 집짓기, 보건·의료, 유기농업 등을 배우게 된다.
정 목사는 “오늘날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피스 메이커’를 키우는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평화의 사도들을 키워 달라”고 요청했다. 뉴욕우리장로교회, 새길교회, 기장 경기북노회 등 이미 다섯 교회가 한 명씩 피스 메이커 육성을 지원키로 했다. 정 목사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평화를 위해 헌신할 기독인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철원=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