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협동조합은 돈 보다 선교 충실해야”… 12월부터 조합원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 허용

입력 2012-11-25 20:33


협동조합기본법(협동조합법)이 내달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협동조합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 법의 골자는 5인 이상 조합원을 모으면 누구나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농업·육아·유통 등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는 협동조합 관련법이 8개의 개별법으로 쪼개져 있는데다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까지 모아야 하는 등 인원구성 요건도 까다로웠다. 하지만 이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교회의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협동조합 설립을 구상 중인 교회들이 꼭 알아둬야 할 사항에 대해 교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종교사회학) 교수는 지난 23일 열린 ‘협동조합과 교회’ 심포지엄에서 “협동조합의 발상은 기독교 정신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한국교회가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이 경쟁보다는 협동, 돈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삼는 공동체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키워드로 급부상한 ‘경제 민주화’의 대안으로도 협동조합 모델이 꼽히고 있다. 주식회사는 물건을 비싸게 팔아 남긴 이윤을 주주들이 나눠 갖지만 협동조합은 물건을 싸게 팔아 이용자들이 함께 혜택을 누리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재단의 경우, 아프리카 농가와 제휴해서 장애인 등이 참여하는 ‘커피 체인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의 농가 협동조합과 연계해 현지에서 원두를 들여오고 국내 협동조합의 유통망을 활용해 커피를 공급하겠다는 것. 국내 장애인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외국 농가 돕기 등도 병행하는 셈이다.

지난 7월, 경기도 부천 서로사랑교회(최재선 목사)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형식의 마을기업 ‘아하체험마을’을 창업했다. 주5일 수업 확대에 따른 맞벌이 부부 가정 자녀들의 여가활용을 위해 부모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현장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교회 측은 이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지역 공동체 모임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정 교수는 특히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이 정부 주도로 이뤄질 경우,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역량부족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조합설립 과정에 교회와 목회자가 동참함으로써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교계 전문가들은 교회가 협동조합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교회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장통합총회 국내선교부 총무를 역임한 진방주 목사는 “교회는 어디까지나 영성공동체”라며 “교회의 협동조합 참여 역시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선교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제천 송학교회가 1969년 설립해 운영했던 송학신협은 1997년 말 불어 닥친 IMF 구제금융 사태로 문을 닫았다. 엄태성 송학교회 은퇴 목사는 “신앙과 선교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고 물질 중심으로 운영이 됐기 때문”이라고 문을 닫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교회 내 사무실을 교회 밖으로 옮기면서 교회와는 상관없는 금융기관이 된데다 조합원과 자산의 증가에만 치중하다가 부실화로 치닫고 만 것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충분한 교육도 필수적이다.

성남 주민교회(이해학 목사)의 경우, 주민생활협동조합 사업의 일환으로 이어가던 독자물류사업이 시행 5년 만에 벽에 부딪쳤다. 생협전국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장건 성남주민교회 장로는 “지역내 생협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협동조합의 철학과 의미를 조합원들에게 충분히 교육하지 못했다”면서 “경영미숙과 소비자와 생산자로부터의 불신 등이 겹치면서 결국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확실한 자금조달 방안 강구, 민주적 절차·운영·관리 보장, 지역사회에 대한 발전기여 등도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교회의 필수 지침 사항으로 꼽힌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