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매료시킨 한국의 발레… 국립발레단, 양국 수교 15주년 기념 공연·발레교실 열어

입력 2012-11-25 18:07


척박한 문화의 불모지에 화려한 발레의 꽃이 피었다. 발레단은 물론 발레학원조차 없는 캄보디아에서 한국 국립발레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캄보디아 역사상 정식 발레단의 공연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발레교실도 진행됐다.

◇캄보디아 사상 첫 발레공연=24일 오후 6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국립극장인 ‘착토묵(Chaktomuk) 콘퍼런스홀’. 공연장은 서울시 여느 구립문화회관보다 낙후됐다. 꺼지고 켜지는 게 전부인 단순한 조명에 무대를 가리는 막도 없다. 무대 뒤에서 아래로 약 15도의 경사까지 있다. 발레 공연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힘든 상황.

하지만 600여석은 꽉 찼고, 관객이나 무용수나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첫 순서로 발레리나 김리회, 발레리노 김기완이 등장하자 객석은 술렁였다. 태어나서 발레를 직접 보는 게 처음인 사람이 상당수. 어느 공연보다 무대에 쏠린 관심이 높아 긴장감마저 흘렀다. 중간 중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벨소리가 울리기도 했지만 박수와 환호만큼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공연은 한·캄 수교 15년을 맞아 캄보디아 대사관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 국립발레단의 대표 갈라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김지영-정영재의 ‘스파르타쿠스’, 신승원-김윤식의 ‘고집쟁이 딸’. 이은원-정영재의 ‘탈리스만’, 박슬기-이영철의 ‘흑조 그랑파드두’ 등에 이어 ‘백조의 호수’ 1막 2장 호숫가 장면까지 이어졌다. 무용수의 화려한 점프와 회전, 감정을 담은 동작들이 나올 때마다 ‘브라보’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방송국 아나운서인 완손꼰 니몰라(22)는 흥분된 표정으로 “태어나서 발레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너무 감동적이고 공연 내내 두근거렸다. 행복했다”고 말했다. 중학생 스레이띵(16)도 “발레라는 것을 오늘 처음 봤다. 아는 선생님이 얘기해주셔 오게 됐는데 무대에 발레리나가 처음 나오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문화의 불모지다. 국립극장에는 주로 캄보디아 전통공연이 열린다. 발레는 처음이고 오케스트라 공연도 거의 없다. 돈을 내고 표를 사서 공연을 보는 문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상황이다.

다만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은 특이하게 발레리노 출신. 크메르 루즈 정권을 피해 1981년부터 약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발레를 가르치며 지냈다. 김한수(58) 주 캄보디아대사는 “국왕이 이번 공연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지난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중이라 오지 못했다”며 “대사관 초청으로 프랑스·러시아대사관 측 관계자도 많이 왔는데 국립발레단이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고 감탄했다”고 전했다.

◇소외계층 어린이에게 발레교실=공연보다 더 뜻 깊은 것은 발레교실이다. 지난 23일 오후 프놈펜 서부 카나디아 공단지역에 위치한 엘드림 예술학교. 가난한 공단 지역 어린이 44명이 국립발레단이 진행한 발레수업을 받으러 왔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작은 교실. 아이들의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한 아이들은 무용수를 따라 기본동작을 따라했다. 벽을 붙잡고 다리를 올려보고, 까치발로 점프도 했다. 남자 무용수가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올리자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직접 나서서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던 최태지(53) 국립발레단장은 수업이 끝날 때쯤 옷이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최 단장은 “프랑스 러시아 등 발레 선진국을 쫓아가기 위해 50년 동안 숨 가쁘게 뛰어왔다. 이제는 문화가 낙후된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려 우리가 가진 것을 이들에게 나눠줄 때가 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를 경험해 본 짜리아(10)는 “다리 벌리고 도는 것을 배웠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발레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발레단은 26일에는 씨엠립 지역의 아동 복지시설을 찾아가 발레교실을 연다. 아쉬운 것은 이번 행사가 일회성이라는 것. 발레교실에 참석한 발레리노 김기완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누가 또 아는가. 이들 중에 세계적인 무용수가 나올지.”

프놈펜(캄보디아)=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