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기태] 책을 버리는 사람들

입력 2012-11-25 20:02


초겨울인데도 도심 아파트 여기저기 이사 차량이 자주 눈에 띈다. 새집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넉넉함과 들뜬 기분은 아마 모든 이들의 소망이자 미덕이리라. 소유에 관한 최대 즐거움이 의식주일진대 그중에서도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주(住)’일 테이니까. 그런데 이사를 오고 가는 풍경의 뒤끝에는 으레 남는 것들이 있다. 한 무더기씩 방치되곤 하는 쓰레기가 그것이다. 특히 아파트 단지에서 이사를 간 후 남은 쓰레기 더미를 살피다 보면 쓸 만한데도 버리고 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책이다. “옮기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너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듯이 한 무더기씩 버려진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자못 우울하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신간에서부터 지난 학기에 썼던 교과용 도서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몇 십 권짜리 전집류에다 저자의 서명이 아직도 선명한 증정본조차 버려져 있다. 누군가 가져다가 유용하게 쓴다면 또 모를까, 그대로 둔다면 필시 폐지로 전락하고 말 책들이기에 나는 주위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책들을 챙기느라 부산해지곤 한다. 곁에 두고 보면 그것은 분명 ‘책’이지만, 폐지로 분류되어 재생공장으로 간다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한낱 종이 재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더 좋은 책으로 태어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필요한 곳에 보내주면 될 것을

책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 책을 살 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고 여겨서 샀다기보다는 한순간의 호기심이나 과시욕 때문에, 아니면 남들도 다 보는 책이라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샀다가는 그 효용성이 없어지고 나니 귀찮은 쓰레기로만 여겨진 것은 아닐까. 기왕 버릴 바에는 차라리 떠나기 전에 이웃에게 물려주거나 책을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려주면 좋으련만.

사람이란 선입견의 동물이다. 직접 체험하지도 않았으면서 남의 말만 믿고, 아니면 잘못된 가르침에 의지하여 배운 그대로를 진실이라 믿는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책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책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사람들이 순간의 안락에 빠져 책을 경시하는 세상. 그러면서 툭 하면 잘못된 세상을 탓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어디에도 내 잘못은 없다. 다 남들이 잘못한 것일 뿐. 그렇다 보니 내가 만들지 않은,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했던 책에 대해 증오심만 쌓인 것일까. 사람들은 한결같이 책을 외면한다. 더 나아가 책을 버린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내 글이 실려 있는 책을, 내가 만든 책을 누군가 내팽개치는 장면을 봤다면, 하다못해 그런 책을 누군가 깔고 앉아 있는 것을 봤다면 내 마음은 과연 어떨 것인가. 반대로 내가 만든 책을, 내가 쓴 책을 누군가 진지하게 읽고 있는 장면을 봤다면 내 마음은 또한 어떨 것인가. 편집자 시절 나는 하마터면 그 앞으로 불쑥 나서 내가 바로 그 책과 이러저러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소리 높여 고백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물며 홀대받는 순간의 기분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든 사람의 정성 생각해봐야

책은, 그것이 어떤 책이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정성이 배어 있는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이다. 수많은 전문가의 손길이 거친 끝에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 한 권의 책이다. 내가 보고 배웠듯이 우리 자식들이,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옳고 그른 것을 간접 체험할 스승이 바로 책이다. 그런 책을 멸시하고 박대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나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과거를 부정하는 정체성 상실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나쁜 책이라면 애초부터 사 보지 말아야 했을 것이고, 필요해서 사 보았다면 그것을 길이 간직하려는 최소한의 양심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기태(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