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엄마에서 돌보미로
입력 2012-11-25 20:01
얼마 전 만난 독거노인 돌보미 세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50대 후반 여성으로, 20대 후반∼30대 초반 취업준비생 혹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자녀를 뒀다. 그중 두 사람은 벌이가 신통치 않던 남편을 얼마 전 잃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그저 기막힌 우연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의 사연을 곰곰이 헤아려보다 깨닫게 됐다. 돌보미가 된 50대 여성의 삶이 엇비슷한 건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들의 남편은 중소기업 월급쟁이와 실패한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지위를 번갈아 오간 듯했다. 가장의 수입은 적고 불안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자라는 동안 대체로 주부였던 세 사람을 오십 줄 들어 일터로 내몬 조건은 두 가지였다. 취업문턱에서 좌절한 아이들과 늙어가는 남편의 쪼그라드는 수입.
세 사람이 비슷한 시기 ‘돌보미’란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위기의 주부들이 “돈을 벌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을 2000년대 중반.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되고 중산층이 변방부터 무너져 내리던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복지’라는 것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2006년 당시 노무현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은 분기점이 됐다. 정부가 보육, 간병 등 복지인력을 대거 확충하겠다고 발표한 뒤 2007년 노인 돌보미, 2008년 노인장기요양제도 등이 잇따라 도입됐다.
수많은 50∼60대 여성들이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노인 돌보미가 되기 위해 몰려들었다. 당연했다. 환자든 노인이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라면 주부들이 늘 해오던 일이다. 무엇보다 평생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던 중년여성에게 허락된 직업은 많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 발표를 보면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2005년 47만1000명에서 올해 112만7000명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지난 7년 청년백수와 비정규직 남편 대신 일터에 나간 돌봄 노동자 65만6000명 중 세 사람. 그들을 내가 만난 것이다.
이미 중·장년 주부들은 가사 도우미, 산후 도우미 등의 이름으로 젊은 여성이 떠난 가정 내 사적노동의 공백을 메워왔다. 젊은 엄마가 낳은 아이를 목욕시키고 미역국을 끓인 대가로 그들은 남성 평균임금의 62%라는, 젊은 엄마들의 저임금을 나눠받았다.
시장화 된 가사노동이 그렇듯, 돌봄 노동의 처우도 열악하다. 대부분 민간(위탁)시설이 고용한 시장화 된 돌봄 노동이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는 하루 8시간 일하고 월 100만원(월 160시간 기준) 미만을 번다. 간병인의 절반은 하루 24시간 주6일 근무하고도 월급 100만원쯤을 손에 쥔다. 환자 옆에서 쪽잠 자고 병원계단에서 한숨 돌리는 시간은 제외됐다. 독거노인 돌보미가 하루 5시간, 일주일에 25시간 일한 대가 역시 월 60만원 미만이다.
과거에도 노인 수발과 환자 간호는 엄마 몫이었다. 엄마들은 며느리 혹은 딸의 이름으로 돌봄 노동을 해왔다. 그 짐을 덜어주겠다던 국가는 저임금과 비정규직의 낙인까지 얹어 같은 짐을 다시 엄마들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국가가 베푸는 복지 서비스인 양 포장했다. 시장화 된 가사노동이 남성에서 젊은 여성, 중·장년 도우미로 가는 다단계 착취구조라면, 시장화 된 돌봄 노동은 엄마들이 희생하고 국가가 생색내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우리 모두 복지를 외쳐 이만큼 왔다. 그래서 지금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한다. 약자의 희생으로 약자를 돕는 게 우리가 바란 복지인가.
이영미 정책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