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워싱턴 컨센서스

입력 2012-11-25 20:01

1997년 12월 3일, 아침 일찍부터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마주 앉았다. IMF로부터 57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는 협상은 지루한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오후 3시 정부 세종로청사 19층 부총리 집무실에서 다시 시작한 협상은 4시간 만에야 접점을 찾았다. 경제정책운용계획 요약본과 정책의향서가 IMF 측에 전달됐다. 오후 7시40분 임 부총리와 캉드쉬 총재는 국내외 기자들 앞에서 성명을 낭독했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는 살인적 재정긴축, 자본시장 조기개방 및 개방 폭 확대, 재벌의 경영구조 개선,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요구했다. 가혹했던 ‘IMF 요구조건’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980년대 초 외채위기에 빠진 남미 국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무부·재무부와 IMF 사이에 이뤄진 밀약 혹은 합의가 그것이다. 89년 이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존 윌리엄슨 전 IMF 고문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재정긴축을 중심에 두고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등 10여개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신자유주의) 확산 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를 미국 기업이 장악하기 쉽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자본주의의 음모’라는 비난도 받는다.

외환위기 당시 IMF, 해외 언론 등은 위기를 부른 주범으로 재벌을 지목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한국의 금융위기는 무엇보다도 재벌의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세계적 경제석학 루디거 돈부시 전 MIT대학 석좌교수는 외환위기 재발방지의 조건으로 기업·은행의 경영 투명성을 꼽기도 했다.

외환위기로부터 15년이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충실히 이행해 3년 만에 부도위기 국가라는 꼬리표를 뗐다.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며 나라를 걱정했던 국민의 피눈물이 일궈낸 성과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골목상권까지 침해하는 비정함은 변하지 않았다. 중소기업, 영세상인이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어야 할 ‘경제 생태계’에는 재벌이라는 맹수만 우글거린다.

국민의 희생으로 성장한 재벌은 이제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 왜 다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은지 깊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