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삼 인천송도高 교장, 월드비전 도움받던 꼬마에서 아프리카 후원하는 선생님으로
입력 2012-11-25 17:45
“절박할 때마다 도움… 사랑의 되돌림 다짐했죠”
‘음수사원(飮水思源).’ 인천 송도고등학교 오성삼(66) 교장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한다는 의미의 이 단어를 좋아한다. 그에겐 ‘사랑의 되돌림’으로 재해석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은 아무리 갚아도 날마다 이자가 불어나는 것 같아요, 받은 혜택을 되돌려 주는 사랑의 되돌림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다면 우리 사회도 건강해질 듯해요.”
그가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은 인생의 험한 강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놓아주신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부친은 국군보병 장교 신분으로 경기도 동두천 지역 최초의 교회인 동두천 감리교회를 세우고 맏아들의 이름마저 항렬을 무시하고 성삼위일체에서 따온 ‘성삼(聖三)’이라고 지을 정도로 신앙이 돈독하셨다. 그러나 부친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어머니와 세 자녀는 동두천에 있는 안흥보육원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때부터 그와 국제구호 NGO 월드비전과의 긴 인연이 시작된다. 보육원 시절 월드비전을 통해 미국인 구스타프 부부의 후원을 받았고, 월드비전의 피얼스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가난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대학시절 머물 방한 칸이 없어 숱한 밤을 여름에는 학교 옥상에서, 겨울에는 도서관 난롯가에서 지새웠다. 힘든 가운데서도 ROTC 훈련을 받았지만 졸업 직전 늑막염으로 장교 임관이 좌절됐다. 이때 월드비전이 다시 이 청년을 좌절 속에서 건져주었다. 당시 등촌동에 있었던 월드비전 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찾아 국군사병으로 입대했다. 이런 끊임없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그는 사랑의 되돌림을 멈출 수 없었다.
학창시절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지내온 그가 가장 절박했던 순간은 1985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때였다. 주정부의 긴축예산 정책으로 주립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조교에게 부여되던 등록금 면제 혜택이 갑자기 중단됐다. 조교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온 그에겐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등록금 1000달러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부모님을 떠올리잖아요.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어린시절부터 인생의 고비마나 도움을 받았던 월드비전이 생각나 당시 월드비전 국제본부 회장에게 편지를 썼어요. 꿈이 좌절되지 않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시면 그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의 절박함이 전해졌는지 며칠 뒤 등기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국제본부 회장의 부인이 격려 편지와 함께 1000달러짜리 수표를 보내온 것이었다. 등록 마감일 하루 전날이었다. 그는 세월이 지나 혹시라도 그 사랑의 빚을 잊을까봐 등록금을 내기 전 수표를 복사해 간직하며 언젠가 ‘사랑의 되돌림’을 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10년 뒤 95년 모교인 건국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중 책상서랍을 정리하다 그 복사된 1000달러짜리 수표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사랑의 빚을 갚을 때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받은 여러 가지 축복을 생각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최소한 7배로 갚는 것이 성경적인 빚 갚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곧바로 통장을 털어 7000달러(당시 560만원)를 월드비전을 통해 지구촌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다.
또 남에게 받은 도움은 언젠가 환원해야 할 ‘마음의 빚’이라고 여기던 그는 대학시절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준 장학금을 이자까지 후하게 붙여 어려운 후학들에게 전하는 ‘장학금 되돌림’ 운동을 펼쳤고 그도 2000만원을 전했다. 이뿐 아니라 그의 ‘사랑의 되돌림’은 두레교회의 북녘동포돕기운동에 1000만원 기부, 매년 후원하는 해외아동을 늘리는 것 등으로 이어졌다. 현재 9명의 해외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한편 그는 30년 넘는 교직생활 중 지난 25년간 건국대학에서 교육학을 강의해 온 교육학자다. 교수시절 세 차례에 걸쳐 교육대학원장을 맡았고, 건대부고 교장도 역임했다. 교육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는 지난 9월 학교장 공모에서 21대 1의 경쟁을 뚫고 송도고등학교 교장에 선임됐다.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았다. “성적 때문에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성적 하위 25% 학생들의 담임교사 역할을 할 겁니다.”
송도=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