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피득 (14) 평생의 사업 철칙 “죽더라도 신용만은 지켜라”

입력 2012-11-25 17:33


1970년대 말 당시 인쇄업계는 활판인쇄가 90%, 옵셋 인쇄가 10% 정도 차지했다. 좁은 시장에 자본도 없는 영세업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보니 외상 퍼주기 경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누가 자본을 더 많이 갖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국 인쇄업계의 40% 시장 점유율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사채에 있었다.

담보 없이 은행돈을 쓰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그래서 오로지 사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난 여기에서 그동안 쌓아둔 신용으로 이 문제를 풀어냈다. 평생 남의 돈 안 쓰고 장사한 적은 하루도 없었다. 30여년이란 긴 세월 장사를 하면서 남의 돈 한 푼 축내지 않고 이자 지불하는 날짜 한 번 어긴 적 없이 지내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건 정말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가능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후 5시쯤 외부에서 일을 마치고 느긋하게 회사에 도착했더니 직원들이 사색이 돼 있었다. “아니, 사장님 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은행에서 1억원짜리 어음이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당시 1억원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은행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사무착오를 일으킨 것이었다. 경매 나온 부동산을 1억원에 매입한 적이 있었는데, 상환조건이 2년 분할상환 조건이었다. 이때 은행의 요구로 1억원짜리 약속어음 한 장을 발행해준 기억이 있다. 이 어음은 어디까지나 은행 보관용으로 교환은 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발행했다. 그런데 신입 은행원이 그것도 모르고 지불 기일이 다 됐다고 해서 은행에 돌려 버린 것이다. 아찔했다.

해결방법은 단 한 가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음 날 아침 은행 문이 열기 전에 현찰을 들고 가서 막는 길밖에 없었다. ‘정말 큰일 났다. 주님, 해결의 방법을 보여주세요.’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며칠 전 평생 나와 돈거래가 있었던 친한 친구가 땅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밤 11시쯤이었는데 겨우 전화연결이 돼 긴박한 사정을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9시 미아리 쪽 은행에서 현금을 빼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충무로 은행까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선뜻 “알겠다”며 나보다 더 걱정을 해주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렇게 해서 간신히 부도를 면할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부도가 일단나면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이렇게 어려운 고비를 수차례 아슬아슬하게 넘길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신용과 관련된 또 다른 일은 동업이었다. 평생 8번 동업을 했는데 주변에선 ‘동업을 하면 결국 싸우고 헤어지게 마련’이라며 한사코 뜯어말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를 선하게 대해주고 적은 이해관계에서 조금만 양보하면 거의 선한 사람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동업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계산이 정확해야 했다. 모든 계산을 투명하게 동업자에게 매일 확인시키고 나중에 딴소리 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을 받아 놨다. 이렇게 1년만 해놓으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다툴 일이 없어졌다. 나는 이렇게 해서 여러 번 동업을 성공시켰다. 반대로 사업 실패 때도 정확한 계산으로 똑같이 손해를 보고 공평하게 처리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