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 꿈 미룬 ‘새정치 아이콘’…안철수式 양보로 신선한 충격
입력 2012-11-24 00:10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에게 야권후보 자리를 내줬다. 50% 지지율을 보인 그가 5%인 박 시장에게 선뜻 양보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없는 신선한 충격을 국민들에게 줬다. 단 20분 회동에 이은 ‘아름다운 양보’는 단숨에 그를 강력한 대선후보 반열에 올렸다.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나 안 후보는 대선을 26일 남긴 23일 ‘아름다운 야권 단일화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다시 양보했다.
◇새정치 아이콘에서 백의종군까지=안 후보가 대중정치 가능성을 보인 것은 지난해 5월 시작했던 청춘콘서트다. 그는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원장, 법륜 평화재단이사장, 개그맨 김제동씨 등과 전국을 돌며 20~30대의 멘토가 됐다. 100일 동안 전국 27개 지역에서 4만3996명이 안 원장을 보기 위해 콘서트장을 찾는 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잇는 고리로 부각됐고 각계 인사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계기였다. 안 후보가 출마 선언 후 단시간 내에 캠프를 꾸릴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맺은 네트워크 덕분이다.
올 초부터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야권 후보로 떠올랐다. 안 후보는 ‘햄릿’ 혹은 출마 선언은 안 하고 눈치만 본다는 뜻의 ‘간철수’라는 비판 속에 ‘장고(長考)’를 거듭했고 지난 9월 19일 서울 충무로 구세군아트홀에서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의사, 성공한 벤처 사업가, 대학교수에 이은 정치인으로의 전환이었다.
안 후보는 전국을 돌며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다”며 강력한 정치쇄신을 주장했다.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을 이룰 유일한 후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의 등장으로 다소 지루했던 대선 판에 정치쇄신과 정당개혁 이슈가 강타했고 선거구도 자체가 ‘새 정치와 구 정치’로 바뀌는 지각 변동이 일었다.
특히 국회의원 정원 감축, 중앙당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등 3대 정치쇄신 과제를 사실상의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던져 정치권과 학계의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안 후보는 문 후보와의 협의를 통해 새 정치 공동선언을 만드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안 후보는 지난 21일 밤 문 후보와의 맞짱 TV토론에서 “늘리자고 했으면 국민적 동의를 못 받았을 것”이라며 “국회의원 정수 조정은 정원 축소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안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은 결코 잊지 않겠다”며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인 안철수’로 살면서 출마선언 당시 국민과 약속한 정치쇄신과 새 정치를 해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차기 대권을 노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안 후보는 우선 문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에 대한 20~30대 젊은층과 중도·보수층의 지지가 두터운 만큼 협력관계가 잘 이뤄지면 문 후보의 득표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대선 이후 행보에는 공동정부 구성, 신당 창당, 민주당 입당 등 다양한 ‘국민연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안 후보는 지난 19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어찌 보면 (국민연대) 그 자체가 추상적인 용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 것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공동정부 등 민주당과의 협력을 통한 새 정치를 택할지, 아니면 신당 창당을 비롯한 독자적인 길을 택할지는 앞으로 선거운동 과정과 민주당의 쇄신 여부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안 후보가 현재의 지지도를 유지하며 신당을 창당할 경우 대선 캠프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것처럼 민주당과 새누리당 등 여야 정치권을 아우르는 강력한 중도통합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 후보가 향후 보궐선거 등을 통해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도 크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을 한번 하고 이 길을 걸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국민, 국회, 대통령 순으로 기술된 헌법을 열심히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2월 안랩 주식(1500억원 상당)을 출연해 만든 ‘안철수재단’을 통한 사회사업도 적극 펼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강조한 사회적 격차 해소를 위해 재단을 운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