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 통계 원칙 벗어난 정치 공학…항목전쟁 올인, 예고된 파경
입력 2012-11-24 00:13
악마는 역시 디테일에 있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지난 8일 한 회의에서 “단일화 원칙엔 합의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구체적 협상 과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됐다.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지지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 언뜻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 양측이 ‘디테일 전쟁’을 벌이다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3일 밤 후보직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정치공학으로 계산된 조사방식 논란이 안 후보의 원칙주의와는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단일화 여론조사는 취지부터 무리였다. 한국조사협회 관계자는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로 수많은 부작용을 노출한 여론조사 대권후보 단일화 방식이 또다시 재현되는 데 대해 우려를 금치 못했다”고 했다.
조사도 졸속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안은 양자대결 여론조사 50%와 후보 적합도 또는 지지도 50%를 합산해 더 많은 지지율을 얻은 후보를 단일 후보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다수 전문가들은 “문항 설계를 아무리 정밀하게 잘 해도 둘의 조사를 합산하는 것은 통계학의 기본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정도로 ‘복잡한’ 여론조사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항 설계를 하고 면접원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후보들이 23일 설사 합의했다 해도 당장 조사를 떠맡을 기관이 없었다”며 “각 캠프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 또다시 대권 관련 승부 부담을 지우려고 해 곤란했다”고 말했다.
제2의 역선택 문제도 있었다. 협상 단계에서 양측은 박 후보 지지자의 역선택만을 문제 삼았지만 골수 민주당 지지자가 안 후보의 경쟁력을 깎아내리기 위해 안 후보가 아닌 박 후보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면 박 후보의 승률이 예측보다 훨씬 높게 나와 아예 조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공신력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조사를 기피했다. 이날까지 양 캠프에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 4곳 가운데 매출액이 200억원을 넘는 메이저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1974년 한국 최초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창시자 박무익 회장이 2002년 노-정 단일화 당시 정치권 조사대행 압력을 피해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처음부터 무리였던 설계와 협상이었다”고 총평했다.
우성규 유성열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