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었어도, 이건 좀… 취업 공포에 예비대학생도 선행학습
입력 2012-11-23 19:10
수시모집으로 서울 시내 사립 K대 상경대학에 합격한 김모(18)군은 최근 함께 합격한 친구들이 입학 전 대학 강의를 예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군도 부랴부랴 강좌를 알아보다 한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23만원을 지불하고 경제·경영수학과 경제학원론 패키지 강의를 신청했다. 김군은 “대학생 형에게 취직을 잘하려면 1학년 때부터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며 “지금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선행학습을 하며 학점관리를 철저히 하려고 한다”고 수강 이유를 밝혔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신입생들 사이에서 선행학습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선행학습과 대입을 위한 논술·면접학원에 이어 대학에 합격해 놓고도 학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학원들은 발 빠르게 전공기초나 교양과목 강좌를 개설해 대학 신입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학문의 전당’에 들어선 학생들이 입학 전부터 학점 경쟁 때문에 사교육 시장에 붙들려 있는 모습이다.
23일 본보의 취재 결과 국내 최대 인터넷 강의 사이트 M사는 ‘대학캠퍼스-학점관리’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 예비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개설해 놓고 있었다. 과목당 가격은 10만원대로 한번 신청하면 130일 동안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패키지 상품도 마련해 2∼3과목씩 듣는 학생들에게는 강의료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 개설과목은 미적분학, 일반물리, 화학, 공업수학, 유기화학, 선형대수학, 경제학원론, 경제경영수학 등 신입생들이 전공기초나 교양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서울 대치동의 논술학원도 예비 대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개설하는 추세다. 이 지역에서 과학논술로 유명한 M논술학원의 경우 지난해부터 대학 입학 전 신입생을 대상으로 자연계 기초교양 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학원은 다음달 26일부터 12∼16강으로 꾸려진 일반물리학, 일반화학, 일반생물학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일주일에 두 번, 3시간씩 진행되는 이 강의료는 2주에 28만원, 한 과목을 다 들으려면 112만원의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한 반에 20여명씩 정원을 채워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몇몇 학원들에 비슷한 강의 개설 여부를 묻자 “내년 초에 강의를 개설할 예정이다” “내부 논의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학원 관계자는 “현 교육시스템에서는 2∼3개의 사회탐구, 과학탐구 선택과목만 공부해 왔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대학에서 배우게 될 교양, 기초전공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미리 예습을 하기 위해 학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 사교육없는세상 정책실장은 “사교육 의존은 초·중학생 때부터 시작해 습관화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사교육 유발요인들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학원들이 교육을 상품화하면서 이러한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