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겨울, 그리고 교회] ‘영적인 양식’ 도 드시게 해야죠… ‘전노사’ 서울역 봉사 현장

입력 2012-11-23 19:29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한낮에도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서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은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했다. 때 이른 겨울 추위는 일반인보다 노숙인에게 더 깊숙이 영향을 끼친다. 거리에 사는 이들에겐 월동용품을 구비하는 일은 생존의 문제다. 찬 바람이 덜 드는 잠자리를 잡는 것 또한 이들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겨울, 노숙인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왔던 21일 오후 1시30분. 서울역광장에 노숙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14개 교회와 기독교 단체로 구성된 전국노인노숙인사랑연합회(전노사)가 마련한 추수감사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쌀쌀한 날씨 탓에 준비된 의자보다 훨씬 적은 수가 모였다. 모인 노숙인들도 예배보다는 500∼1000원에 파는 외투와 바지에 더 관심을 보이거나 아예 의자에 기대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일부는 “이게 뭐하는 거냐” “여기 데려오려고 잘 자던 나를 깨웠느냐. 내 이불 찾아내라”고 고함을 치며 다른 노숙인을 밀치기도 했다.

다소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예배를 준비하는 전노사 소속 목회자들의 손길은 분주했다. 저녁 배식 전까지 추수감사예배와 노숙인 공동체 찬양발표회를 마치기 위해서다. 이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함께 연합예배를 준비하고 예배 후 제공될 저녁식사와 간식, 월동용품을 마련했다.

전노사 사무총장 두재영(사랑실천공동체) 목사는 “우리는 반드시 예배나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대접한다”며 “한 끼 식사도 이분들께 중요하지만 영적인 양식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배로 노숙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두 목사는 “예배에 참여한다고 단번에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씀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분이 있기에 이들을 위해 예배를 준비한다”며 “준비에 어려움도 많지만 술 먹고 와 예배를 방해했던 이들이 이젠 봉사활동에 나서고 새 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때 더 없는 보람과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교회, 노숙인

2010년 결성된 전노사는 서울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기독교 노숙인 봉사단체들의 모임이다. 초교파로 구성된 14개 교회와 단체들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무료급식시설 ‘따스한 채움터’에서 돌아가며 식사와 간식을 준비한다. 또 명절이나 성탄절, 추수감사절 같은 절기마다 연합해 예배를 드리고 여름엔 수련회를 열어 노숙인의 사회성 향상을 돕는다.

처음부터 이들이 힘을 모았던 건 아니다. 3년 전만 해도 개별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보니 노숙인 지원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노숙인에게 매끼 식사와 간식을 제대로 줄 수 있는 단체는 몇곳 없었다. 각자 서울역에서 배식차량을 이끌고 배식하다 보니 미관상 좋지 않아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원성도 상당했다. 일부에서는 ‘노숙인으로 목사들이 배불린다’는 소리도 나왔다. 노숙인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도 미약했다. 급식 제공과 예배만으로는 이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고 새 사람이 돼 서울역을 떠나는 것’이 공동의 목표임을 알게 된 14개 교회와 단체는 연합단체를 만들고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심리치유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사랑실천공동체 두 목사는 상담을 맡고, 행정사 자격증이 있는 살맛나는교회 이병선 목사는 말소된 주민등록 회생 등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식이다.

노숙인 상태에 따른 ‘단계별 지원책’도 만들었다. 전노사는 노숙인의 건강상태나 의지 등을 확인해 이들에게 적합한 교회나 단체, 시설을 추천해 준다. 배고픈 이에겐 급식봉사를 하는 따스한 채움터의 위치를 알려주고, 휴식과 잠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숙박시설이 갖춰진 교회를 안내한다. 신앙의 성장이나 취업 알선을 원하는 노숙인들에게는 노숙인 공동체나 상담소가 있는 교회를 소개해준다.

교회라고 해서 노숙인의 변화와 전도를 원하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365일 24시간 교회를 개방해 잠자리와 인터넷 이용, 물품보관 등 각종 편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교회도 있다. 드림시티 선교교회 우연식 목사는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시간을 제외하면 빈 공간이 된다”며 “휴게실처럼 누구나 쉽고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니 이제 예배시간만 되면 공간이 꽉 찬다”고 말했다.

자립의 그날까지

추수감사예배 후 저녁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은 오후 6시쯤 되자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서울역광장에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셨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광장을 배회하는 이도 있었다.

스스로 저녁을 준비하며 수요예배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족사랑교회 공동체에 속한 노숙인과 실직가장 30여명은 추위 대신 찬양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1년 전 결혼해 이 공동체를 떠난 강석철(46) 집사도 모처럼 교회를 찾았다. 예전 자신처럼 외롭고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고된 일과를 예배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근처 세차장에서 일하는 그는 이 교회 유수영 목사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어려울 때마다 말씀으로 바로잡아준 유 목사처럼 살고 싶다는 그는 이제 목사를 꿈꾸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사는 게 힘들어 유혹에 빠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죠. 하지만 매일 말씀 5장씩 읽고 목사님 말씀 들으며 시련을 견뎌나갔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동체를 만나기 전 힘겹게 살았다는 그에게서는 더 이상 노숙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인생의 밑바닥 옆에 교회가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