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아베·자민당의 역주행
입력 2012-11-23 19:17
올 노벨평화상은 유럽연합(EU)이 받았다. 전쟁으로 분열된 유럽 대륙에 평화를 정착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수상 이유였다. EU 회원국들의 재정위기가 세계 곳곳에 경제 불안과 고통을 떠안기고 있으니 가당찮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럽통합의 의의는 작지 않다.
EU의 평화정착 노력이 그렇듯 높이 평가받는 정도라면 ‘전쟁 포기와 비무장’을 담은 일본헌법 9조는 1947년 공포된 이래 단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으니 가위 노벨평화상감이다. 다만 이 평화헌법이 끊임없이 일본 우익들의 눈엣가시가 돼 있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평화헌법의 산파 노릇을 했던 미국마저 한국전쟁을 계기로 9조 개정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고 일본 우익들도 집요하게 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국민의 높은 반전의식, 그리고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발의 및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이라는 높은 제도적 허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다음달 16일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는 9조 개정을 포함한 극우 공약을 21일 발표했다.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도 담았다. 아베 총재와 자민당의 명백한 역주행이다.
역주행이란 말은 패전 직후 연합국이 추진한 일본의 민주화·비군사화에 역행하는 정치·경제·사회적 흐름을 말한다. 당초 우익 신문으로 평가되는 요미우리의 1951년 기획특집 제목이었는데 오늘날엔 일본에서 우익민족주의 부활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뿌리내렸다.
이번 사태에 빌미를 준 건 2009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다. 처음엔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할 만큼 역내 평화와 연대를 강조했으나 현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한국·중국과의 영토 갈등이 고조되자 우익본색을 급격하게 드러냈다.
아베는 이에 뒤질세라 극우노선을 편 셈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상응한 바람직한 해법을 내놓기보다 낡은 우익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얄팍한 수법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일본을 어렵게 할 것이다. 주변의 어떤 정상들이 아베를 대화 상대로 여길 것이며 일본을 예우할 것인가.
일본 안에서조차 아베와 자민당 노선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손에 쥐고도 엉뚱한 주장만 펴는 일본의 우익정치가들이 참으로 안쓰럽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