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가능성 보여준 안철수의 등장과 사퇴
입력 2012-11-24 00:14
文 후보는 安 후보 지지한 국민의 뜻 새겨야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문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후보 등록 개시일을 이틀 앞둔 23일 밤 후보 사퇴를 전격 선언했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사퇴의 변을 통해 “제가 대통령이 돼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며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고 밝혔다.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지난 6일 문 후보와의 첫 회동에서 단일화 원칙에 합의한 이후 단일화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실무 협상팀이 가동되고 두 후보 간 담판도 벌였으나 파행이 거듭되자 단일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했다는 얘기다. 협상 과정에서 ‘통 큰 형님’ 이미지를 확산시키려 노력한 문 후보와 비교할 때 안 후보의 결단은 신선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단일화 협상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새 정치를 강조하던 안 후보 스스로도 부담을 느꼈을 듯하다. 안 후보가 구현하고자 했던 ‘새 정치’를 문 후보는 대선기간 내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안 후보 행동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안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한 ‘양자대결+지지도 조사’ 방안을 최후통첩식으로 문 후보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하루 만에 덜컥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것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다. 마음이야 불편하더라도 문 후보와 만나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 뒤 문 후보 손을 직접 들어주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더라면 단일화 효과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고, 안 후보도 더 높게 평가받았을 것이다. 안 후보가 좀 더 숙고했어야 했다.
안 후보가 사퇴한 근본적 이유는 지지율 하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혁신을 외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등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문 후보가 야당 텃밭인 호남을 집중 공략하면서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게다가 지난 14일 안 후보가 단일화 협상을 갑자기 잠정 중단시킨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됐다. 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안철수 펀드’도 목표액의 절반을 채우지 못한 것도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이다. 안 후보가 단일화 경쟁 초기 문 후보보다 높았던 지지율을 유지했더라면 전격적인 사퇴는 없었을지 모른다.
정치권의 높은 벽도 작용했다. 안 후보는 기존 정당을 불신하는 무당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약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혁신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혈혈단신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해찬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민주당의 조직력과 기획력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9월 19일 대선출마 선언으로 본격화된 안 후보의 정치실험은 2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의 등장과 사퇴는 우리 정치의 새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