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21) 전리품] 유혹에 담대하라

입력 2012-11-23 18:54


1598년 음력 11월 19일은 노량해전이 일어난 날이다. 그동안 전투와 달리 철수하는 일본군의 길을 막고 최후의 결전을 한 것이다. 이순신은 평소 “단 한 척의 적선도 돌려보낼 수 없다(편범불반·片帆不返)”고 했고, 단호한 응징만이 재침략을 막을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피해도 될 전투를 강행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일본군의 저항은 엄청나게 거셌고, 이순신 자신도 죽음을 맞았다.

해전 직전 일본군은 전투를 회피하고자 명나라 도독 진린과 이순신에게 뇌물을 주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해 몰래 도망가기 위해 뇌물로 유혹하려 했다. 뇌물을 받은 진린은 일본군에게 길을 열어주자고 이순신을 설득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 그때 이순신은 “대장으로 화친을 말할 수 없고, 원수를 놓아 보낼 수 없소”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진린을 설득해 최후의 대결전을 펼쳤다.

큰 선물이나 보잘것없는 작은 선물이나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는 마찬가지다. 커다란 뇌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순신은 선물이든 뇌물이든 자신에 대해 철저했다. 그는 뇌물은 물론 전투 승리로 얻은 전리품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부하들의 사기 고양을 위해 노획물을 즉시 나눠 줄 수 있었음에도 나라의 허락 없이 독단으로 처분하지 않았다.

“일본군 전선에 실려 있던 물건 중 쌀 300여석은 굶주린 격군과 사부들의 양식으로 적당히 나누어주고, 의복과 목면 등도 나누어 주어 적을 무찌른 뒤에는 이익이 따른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합니다만 조정의 조치를 기다리며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즉시 나라와 리더인 자신을 믿고 기다린 부하들을 위해 물건을 분배해 주고 자신은 취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젊었을 때부터 변함없이 자신부터 청렴함으로 무장해 부정부패를 근절시키려 했고, 공과 사도 엄격하게 구분해 행동했다. 또한 절차나 규칙이 불합리하든 그렇지 않든 솔선수범해 지켰다. 그런 자세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백성과 부하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한 그가 말했던 ‘편범불반’의 정신은 일하는 사람의 철저한 태도를 보여준다. 한번 시작한 일은 그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다.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어떤 유혹이나 시련도 이겨내는 태도다. 편범불반의 정신으로 삶의 전쟁터에서 생기는 고난을 극복해 가자.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