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엘림교회] “교회만 오면 마음이 편해 구원 받은거지”
입력 2012-11-23 18:12
충북 청원군 초정약수터에서 1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엘림교회. 교회는 청주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분 달리면 도착할 만큼 도심과 가까웠지만 그 풍경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에는 가축 사료로 쓰일 볏짚이 곳곳에 놓여있고 교회 왼편에 맑은 계곡수가 흐르는 야트막한 산이 펼쳐져 있다. 속리산공원이나 약수터로 향하는 승용차들이 교회 앞을 종종 지나쳐 갔지만 교회 주변의 마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음성 성경’으로 믿음 키우는 어르신들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 엘림교회의 전도 대상은 미원마을을 비롯해 5개 마을에 사는 200여명이다. 대부분 60·70대 고령의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거나 고추, 감자, 깨 등을 재배한다.
마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오랜 기간 터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교회가 위치한 미원마을은 오랜 세월 유교문화를 받들어온 해주 오씨 집성촌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 15일 교회에서 만난 신금지(72) 할머니는 “이 동네는 죄다 오씨네가 사는데 거의 예수님을 안 믿어. 마을에서 나만 열심히 댕기는 거 같아서 조금 그래”라면서 얘기를 꺼냈다.
“영감도 해주 오씨인데 예전에 교회에 나오다 이제 안 나오셔. 고집이 얼매나 센지…. 그전에는 술 자시면 아주 변이 났어. 아들이고 며느리고 다 때려치우고 교회 가지 말라고 했어. 요새는 술 안 하시니까 그나마 아무 소리 안 하는 겨.”
곁에 있던 한 어르신은 “아유, 교회 못 가게 말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추 농사를 짓는 신 할머니는 “우리 둘째아들하고 며느리가 지성으로 예수님을 믿으니까 아들 위해서라도 교회에 열심히 나와야지”라고 말했다.
엘림교회 ‘1호 교인’은 박영순(77) 할머니다. 심장병을 앓은 박 할머니는 김동하(61) 목사의 헌신 덕분에 믿음을 갖게 됐다. 김 목사는 7년 전 “가슴이 조여 와 참지 못하겠다”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박 할머니를 서울 큰 병원에서 진단받도록 했다.
이후 박 할머니는 심장판막수술을 받고 건강을 조금씩 회복했다. 김 목사는 형편이 어려운 박 할머니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했고 원미마을의 낡은 집 대신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 시설인 ‘엘림의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죽었을 건데 목사님이 도와줘서 살았어. 그냥 놔뒀으면 죽었지, 죽었어. 예수님을 믿어야 내가 살겠어서 교회에 나왔지.”
박 할머니는 “예수님 믿으니까 마음이 정말 편하다”면서도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했다. 교회 다니면서 크게 달라진 게 있느냐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별 거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주변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기쁨이 있다고 하셔야지”라고 거들었지만 박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기도를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저한테 구원을 주셨겠어? 나 같은 사람은 배우지를 못 해서 착실하게 기도를 해야 하는데…. 교회에 있으니까 마음은 참 즐거운데 내가 뭘 알아야지.”
글을 읽지 못하는 박 할머니는 교회에서 음성 성경으로 공부한다. 김 목사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 성도들을 위해 매일 점심시간 이후 예배당에 잠시 모여 음성 성경 교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경을 1년에 1독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목표다.
지난해 9월부터 엘림의집에서 생활한 서술이(84) 할머니는 “만날 성경말씀 들어도 잘 기억이 안 난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절에 다니다 구원을 받았다”며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서 죽을 작정을 하고 여기 들어왔는데 죽지 않아서 다행인지…”라고 말했다.
한 어르신이 “늙은이들 죽는다는 거 다 거짓말이여”라고 농을 치자 주변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서 할머니는 “내가 일단 살고 봐야 하는데 기도를 해야지. 온 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 시방도 아프긴 한데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라고 말했다.
장애아 키우며 복지사역 꿈 키워
“목사님 내외분 여기 오셔서 고생 참 많았어유. 아무것도 없이 오셨는데 동네 인심도 안 좋고 너무 반대가 심했지유.”
전북 무주군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서 사역하던 김 목사는 2002년 2월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예배당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것이었다. 김 목사 가족을 제외하고 교회에 찾아오는 성도는 없었다.
당초 김 목사는 땅값이 비교적 싼 미원면 일대에 예배당을 짓고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노인복지 시설로 방향을 틀었다. 이마저 쉽지 않았다. 환경오염이 우려될 뿐 아니라 혐오시설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며 주민들이 또 반대했다.
김 목사는 군청 담당자와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배당과 엘림의집 공사는 각각 2004년, 2007년에 마무리됐다. 중간에 비용이 부족해 공사는 중단되기 일쑤였다. 김 목사는 시중은행에서 대출 받아 공사비를 충당했다.
교회는 가까스로 세워졌지만 전도가 쉽지 않았다. 김 목사 부부는 무작정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찾아가 씻겨드리고 청소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논밭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면서 접촉 기회를 넓혔다. 교회 절기와 창립기념일에는 마을 잔치를 열어 자연스럽게 예배당에 찾아올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성도는 40명으로 차츰 늘어났고 교회 개척 8년 만인 2010년에 자립을 선언했다. 김 목사는 “건축업자를 잘못 만나 손해를 보기도 하고 주민들이 진심을 잘 몰라줘 여러 번 좌절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큰 힘을 주셨다”며 “선한 뜻을 품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이뤄주신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늦깎이 목회자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다 아들이 장애를 갖게 된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2남 중 첫째인 태희(33)씨가 10살 때 고열로 의식을 잃어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 병원 진단은 “퇴원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였고, 태희씨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 목사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신앙이 깊어졌다”면서 “주의 종으로 써주신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겠다는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43세 때 회사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서울장신대에 편입해 신학 공부를 했고 이후 서원한 대로 열악한 시골교회에서 사역했다. 장애인 복지 사역에 뜻을 품은 이유 역시 자신의 아들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 목사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고 한동안 청주에서 장애인 복지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엘림교회에는 장애인 복지 사역을 하다 맺은 인연으로 김 목사를 돕는 성도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종순(57·여) 권사다. 김 목사 부부가 청주에서 ‘장애인 전도단’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장애인이 알고 보니 박 권사의 시동생이었던 것. 엘림의집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박 권사는 “시동생뿐 아니라 내 아들도 몸이 좋지 않은데 목사님 아드님도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장기적으로 엘림의집을 비롯한 복지시설이 ‘엘림복지타운’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현재 엘림의집에서 생활하는 어르신 성도는 20여명이다. 그 가운데 기초생활수급비를 교회에 헌금하는 어르신도 있고 자녀들이 수십만원씩 한 달 생활비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교회는 또 청주시내에 작은 아동그룹홈 ‘꿈이있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그룹홈에서는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초등학생 등 5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 목사는 “결손가정 어린이와 돌볼 사람 없는 장애인,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을 하나님의 품속에서 보살필 수 있는 엘림복지타운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또 한적한 시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은 도시 사람들도 찾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큰 힘을 얻은 성경 말씀은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엘림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하면 2시간20여분 걸린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증평IC로 나와 ‘괴산, 증평’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51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진암사거리에서 ‘미원, 내수’ 방면으로 우회전, 511번 지방도로를 탄다. 북이삼거리에서 ‘속리산, 미원, 청주’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36번 국도를 타고 2㎞쯤 가다 내수IC에서 ‘초정’ 방면 511번 지방도로로 진입한다. 초정삼거리에서 ‘속리산, 보은, 미원’ 방면으로 우회전해 2㎞쯤 가다가 다시 우회전한 뒤 8㎞ 가다 보면 좌측에 교회가 보인다.
청원=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