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여인들 자긍심 채워준 ‘빛나는 돌’
입력 2012-11-22 19:30
불멸의 보석/스테파노 파피·알렉산드라 로즈/투플러스북스
사랑이냐, 왕위냐. 그 갈림길에서 사랑을 택했던 세기의 로맨티스트 영국 윈저 공(에드워드 8세)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너무 잘 알려져 식상하다. 하지만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식을 1937년 고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해야 했고, 영국 왕실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해 결국 파리에 정착해서 평생을 보냈던 두 사람의 위무와 사랑의 증표가 됐던 보석에 관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이 책은 이런 보석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 보석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주인, 즉 은막의 스타, 왕족과 귀족, 상류사회 여성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다. 서민들에게는 로망일 뿐인 보석에 관한 이야기는 부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인생사에 공감하고 같이 한숨짓게 한다.
윈저 공은 심프슨 부인이 남편과의 이혼 판결을 받았을 때 19.77캐럿짜리 콜롬비아산 에메랄드를 선물한다. 백금으로 된 몸체엔 ‘우리는 지금부터 하나’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후 결혼 생활 내내 이 커플은 보석 소장품을 늘려갔다. 왕비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미국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었을는지 모른다.
윈저 공작부인은 자신의 전 보석 컬렉션을 경매해 수익금을 파리 파스퇴르 연구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에게 보여준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1986년 그녀의 사후에 윈저 부부의 컬렉션 경매 가격은 총 3100만 달러(336억원)나 됐다. 보석은 단순히 부와 명예의 과시가 아니라 이처럼 정서가 깃들고 교감을 나누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1939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로렌스 올리비에를 상대역으로 해서 여주인공 캐시 역을 맡았던 ‘차가운 미녀’ 멀 오베론. 고혹적 아름다움을 무기로 할리우드 생활을 만끽했던 그녀는 인도계 혼혈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싶었다. 검은 피부의 어머니를 가정부라고 말하고 다녔던 오베론은 보석의 화려함으로 어두운 과거를 가리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스타 폴레트 고다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놓쳤을 때 그녀를 사랑했던 찰리 채플린은 금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로 된 꽃모양 뱅글(팔찌의 일종)을 선물해 위로했다.
보석은 상류사회로 진출한 커리어 우먼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심벌이기도 하다. 근면성과 저돌성으로 얼굴 크림에서 시작해 화장품 제국을 건설한 헬레나 루빈스타인에게 보석은 자긍심이었다. “화가 났을 때 어떤 여성들은 모자를 사지만, 나는 좀 더 사치스러운 것을 삽니다. 내 생활이 원래 그러니까요.”(356쪽) 147㎝의 단신인 그녀는 반지는 큼지막한 걸 즐겨서 어떤 건 우악스러울 만큼 컸다.
명작의 손바뀜은 컬렉터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건 어마어마한 가격과 귀족적 화려함, 품격을 특징으로 하는 명품 보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헬레나가 가진 인도풍 원석의 매혹적 목걸이는 한 때는 윈저 공작부인이 소장했다. 사랑은 지고 세월이 흘러 소유자가 변해도 이처럼 보석은 영원한 것이다.
책에는 명사들이 착용했던 목걸이와 팔찌 등이 원색 화보로 제공돼 눈요기만으로도 잠시 황홀해진다. 저자는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의 보석 부문 수석 디렉터들이다. 김홍기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