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선택
입력 2012-11-22 19:37
월동준비 겸 옷장을 정리하다가 아끼는 점퍼를 꺼내 입어봤다. 10번의 겨울 동안 교복처럼 입어댔더니 옷 속의 깃털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인지,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폭 가라앉아 버렸다.
새로 하나 장만할 생각에 패션잡지도 들여다보고 인터넷 쇼핑몰도 뒤져봤지만 눈만 높아지고 도통 고를 수가 없다.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유행에 뒤지지 않는 기본 스타일의 검정색 점퍼. 무릎 정도 길이에 올겨울 한파에 제몫을 다할 만큼 아낌없이 솜털을 넣어주되 가볍고 부해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 가격은 착한 그런 옷을 찾다 보니 몇 날 공을 들여도 답이 안 나온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볼까 하다가도 작년에 실패한 경험을 떠올리니 차라리 안 사고말지 싶다. 별 생각 없이 백화점 세일 때 사서 몇 번 입지도 않은 그 옷을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쓰렸던가.
앞으로 몇 년은 입어야 하니 이번엔 전문가리뷰, 착용후기, 품질비교에 가격까지 꼼꼼하게 챙겨보고 살 생각에 다시 인터넷 창을 열고 앉았는데 포털 사이트의 대통령 선거 기사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문득 옷 고르는 정성으로 투표를 했으면 나라를 구했겠다 싶어 헛웃음이 나오면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의 선거와 쇼핑에 관한 분석글이 생각났다. 그는 선거가 ‘시장의 상품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을 선택하는 행위’인 쇼핑과 다르지 않으나 소비행위는 바로 경제적 손실을 체감·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숙고의 공을 들이는 반면 투표행위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황 교수의 고찰이 제대로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니 우리는 투표의 목적과 선택의 기준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 같다. 구매 목적과 기준이 불명확한 소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늘 결과에 대한 원망과 후회가 컸고 결국 심사숙고의 기회조차 갖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외면 덕분에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잡아주는 도구가 돼야 할 선거가 이념과 이상에 매달린 채 좌우로 요동치며 표류하고 있다. 기대와 실망을 되풀이하며 무의미하게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이상은 허상이요 우상일 뿐이다.
선거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12월 19일 선택의 순간까지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지금은 달뜬 마음 가라앉히고 조용히 입을 닫고 이 말을 곱씹어 볼 때인 것 같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