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류가헌, 두 스타일을 하나로

입력 2012-11-22 19:37


사대부(士大夫)가 살았던 북촌(北村)에 비하면 경복궁 서쪽의 한옥들은 다정하다. 자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집과 집 사이 경계조차 애매할 때가 많다. 이런 서촌(西村)의 통의동 7-10번지, 좁은 골목 구석에 갤러리 ‘류가헌(流歌軒)’이 있다. 주로 사진을 전시한다. 지금은 ‘굴업도의 바람’이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열흘 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룰 협상팀이 이곳에서 첫 상견례를 했다. 절묘한 선택이었다. ‘공간의 정치학’이 있다면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것일 테다.

류가헌은 나란한 두 한옥이 담장을 허물어 ‘한 집’이 된 형태다. 조금 큰 40평 ㄱ자 한옥은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사진집을 볼 수 있는 커피숍도 있다. 30평 ㄷ자 한옥은 작업실 겸 사무공간이다. 전시 작가들의 작품을 편집해 여기서 무크지를 만든다.

체구는 조금 달라도 두 한옥은 사이좋게 기와지붕을 맞대고 있다.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오롯이 ‘사진’만을 위한 공간이 됐다. 류가헌의 주인은 “혼자서는 서 있기 어려운 ㄱ을 ㄷ이 디딤돌처럼 받쳐주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두 후보의 상황은 두 한옥을 닮았다. 혼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없다. 정권교체도, 새로운 정치도, 그 많은 공약도 실현하지 못한다. 세력의 크기는 조금 달라도 담장을 허물고 어깨를 맞대야 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받쳐줘야 입만 열면 얘기하는 ‘국민’만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러자고 만난 장소가 류가헌이었다. 이보다 더 상징적인 공간은 없다.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스타일이 다르다. 지난 18일 협상 중단 사태를 풀기 위해 만나면서 기자들에게 각각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마주앉게 돼 다행입니다. 실무협상도 빨리 재개해 국민들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문재인) “정권교체와 대선 승리가 중요합니다.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안철수)

21일 후보 단일화 TV토론에서 문 후보의 첫 질문은 “단일화 협상이 잘 안 되고 있는데 우리가 내일이라도 직접 만날까요?”였다. 반면 안 후보는 “2012년 대한민국에서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를 먼저 물었다. 문 후보는 현실적이고 안 후보는 철학적이다. 문 후보는 구체적인 말을 하지만 안 후보는 비유와 일화를 동원한다.

이렇게 다른 화법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역할을 나눠야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 단일화의 원리는 류가헌을 만든 이들이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보여줬다. 양측 협상팀은 그 공간에 들어앉아서도 이를 깨닫지 못한 듯하다. 열흘이 넘도록 담장조차 허물지 못하고 있다. 힘을 합치자고 만나서 서로에게 던지는 말이 너무 거칠다. 끌어안지 않으면 둘 다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알면서 저토록 막판에 몰렸다.

사진가 이한구씨와 그래픽디자이너 박광자씨는 2년 전 의기투합해 류가헌을 만들었다. 전시할 곳을 찾지 못하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을 끌어 모아 직접 작업복 입고 두 집을 한 집으로 합치는 개조 공사를 했다. 이렇게 참여한 이들의 분야별 ‘재능’을 한데 모아 갤러리를 운영한다. 流歌軒은 ‘흘러가듯 노래하는 집’이다. 이런 공간이 만들어지려면 물이 흐르듯 순리를 따라야 하나 보다.

태원준 정치부 차장 wjtae@kmib.co.kr